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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루터의 면죄부 비판 대자보, 종교개혁 신호탄 되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그가 종교개혁의 주요 원리로 제시한 만인사제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고 양심의 자유를 확립함으로써 자유주의의 발전에 기여했다. 
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이다. 1517년 이날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반박하는 95개 조 논제를 비텐베르크성(城) 교회 대문에 내걺으로써 종교개혁을 출발시켰기 때문이다. 중세 가톨릭에서 사제는 미사 집전 시 신의 권능을 빌려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누구도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었다. 이에 반해 루터의 종교개혁 핵심 원리 중 하나인 만인(萬人)사제주의는 영적인 지위에서 사제와 평신도가 대등하다고 주장했다.



만인사제주의는 ‘인식론적 개인주의’를 천명했다. 신의 음성을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의 뜻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다른 사람보다 옳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모두 다 제각기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루터에서 비롯된 이 개인주의는 그 후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자유란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루터의 만인사제주의는 모든 참된 기독교 신자들의 영적 평등을 급진적으로 주장함으로써 유럽 사회의 존립 기반이 되었던 기존 계급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자신의 사상이 그런 의미를 갖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루터는 종교개혁 메시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사회적·정치적 지도자들의 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고, 이로 인해 종교개혁 운동은 급속히 보수화되었다. 실제로 루터는 1525년 이후 만인사제주의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루터가 마무리하지 못한 만인사제주의를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시인 존 밀턴이 완결지었다. 밀턴은 각 개인이 사제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목사를 ‘종교’로 삼는 개신교 신자들을 ‘가톨릭만도 못한 자들’이라고 신랄하게 규탄했다. 밀턴은 만인사제주의의 실현을 위해 제2, 3의 종교개혁을 촉구했다.



종교개혁의 후예를 자처하는 한국의 개신교 목사 중 상당수가 가톨릭의 사제주의로 환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들도 등장하면서 가톨릭의 교황무오설(敎皇無誤說)을 연상케 만든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에는 교황이 한 명뿐이지만 개신교는 교회마다 교황이 한 명씩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다. ‘정체성 상실’이 빚어낸 씁쓸한 풍경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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