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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광주에서 터져나온 일제하 최대의 학생 독립운동

나주에서 기차를 이용해 광주로 통학하던 광주여자보통학교 학생 이광춘(왼쪽)과 박기옥. 광주중학생 후쿠다 등 일본인 학생들이 박기옥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희롱한 일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 눈빛]
1929년 11월 3일은 일요일이었다. 일제는 소위 4대 명절 중 하나인 ‘메이지(明治)절’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했다. 음력으로 10월 3일 개천절이었던 이날. 광주 시내 이곳저곳은 메이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목소리 대신 학생들이 외치는 항일 구호가 메아리쳤다. “조선 독립 만세!”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하라!” “일인 학교 광주중학교를 폐쇄하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일어난 광주로 통학하는 한·일 학생 간의 사소한 시비가 발단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잘 조직된 학생운동으로 진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광주 지역에 1926년에 결성된 성진회(醒進會)와 그 후신인 독서회, 그리고 소녀회 같은 항일 학생비밀결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몰아친 검거의 칼바람에 11일까지 70여 명의 학생들이 쇠창살에 갇힌 몸이 됐다. 그러나 일제의 보도통제 속에서도 봉기는 삽시간에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 방방곡곡에서 거세게 타올랐다. 이듬해 3월까지 5개월여 동안 전문학교 4개 교를 포함, 149개 교 5만4000여 명의 학생들이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동맹휴학과 시위투쟁을 전개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642명이 구속되고 582명이 퇴학, 그리고 2230명이 무기정학에 처해진 일제하 최대의 학생운동이었다.

“약소 민족 해방 만세!” “제국주의 타도 만세!” “피압박 민족 해방 만세!” “무산계급혁명 만세!” 일제 경찰이 ‘주의적(主義的) 운동’으로 몰아붙일 만큼 이 운동을 주도한 학생 지도부는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장래의 공산주의 실현의 전위투사로서 먼저 이론을 연구하고 점차 실현으로 옮겨 가는 것’을 자신들의 임무로 규정한 성진회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이제 학생운동은 계몽운동이나 교육운동의 단계를 넘어 일종의 정치투쟁으로 진화했다. 1926년 순종의 붕어를 계기로 일어났던 6·10 만세운동 때 이미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함께 일제하 학생운동을 추동하는 또 하나의 축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학생운동 지도부의 사회주의적 계급관은 일제의 민족 억압과 차별이 낳은 의사(擬似) 계급주의였으며, 그때 학생 대중의 가슴을 울린 구호도 ‘민족 차별 금지’와 ‘우리 역사와 말에 대한 교육 실시’ 같은 민족주의적 슬로건이었다. 민족을 바탕으로 민중을 품은 197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원형인 광주학생독립운동 8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정치투쟁으로서의 학생운동이 소멸될 다원적 민주사회의 완성을 꿈꾼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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