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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37> 조선 혁명가들



▲1926년 가을 난창(南昌)에서 한국인 혁명가들이 북벌 도중 전사한 김준섭(金俊燮)이라는 전우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 김명호 제공

조선 혁명가들, 중국 북벌에서 독립을 꿈꾸다



중국 역사에는 총 30차례의 북벌(北伐)이 등장한다. 모두가 명분은 그럴 듯했지만 투기성이 강한 군사행동이었다. 성공했다 하는 날에는 천하를 한 손에 휘어 잡을 수 있었지만 결과는 한결같이 정반대였다. 제갈량(諸葛亮)은 다섯 차례 북벌을 시도하느라 골병이 들었고, 강유(姜維)는 22년간 11차례 북벌을 감행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남송(南宋)의 악비(岳飛)도 마찬가지였다. 네 차례에 걸친 북벌의 대가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후일 민족영웅으로 추앙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지 모른다. 태평천국(太平天國)도 전 중국의 반을 점령했지만 북벌에는 실패했다. 명(明)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북벌에 성공한 유일한 황제였다. 여덟 차례를 시도한 끝에 몽고족을 내쫓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29번의 북벌은 중국인들끼리의 살벌한 잔치였지만 1924년에서 27년까지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해 북방 군벌들과 치른 마지막 북벌전쟁은 우리와도 무관치 않았다.



23년 6월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3차 전국대표대회는 전 당원이 개인 명의로 국민당에 입당할 것을 의결했다. 7개월 후 국민당도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소집했다. 쑨원(孫文)은 “소련과의 연합, 공산당과의 합작, 농민·노동자와의 상부상조”가 골자인 신삼민주의(新三民主義)를 제창했고 대표대회는 공산당이 기초한 ‘반제·반봉건(反帝·反封建) 선언’을 통과시켰다.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도 위원의 4분의 1을 공산당원에게 할애해 리다자오(李大釗)·탄핑산(潭平山)·마오쩌둥(毛澤東)·린쭈한(林祖涵)·취추바이(瞿秋白) 등 10명을 중앙집행위원이나 후보위원에 선출했다. 중앙당의 조직부장·농민부장·선전부장 등 요직도 공산당원들로 채워졌다. 마오는 대리 선전부장 자리를 차지했다.



국·공 합작의 목적은 혁명의 완성, 즉 북벌이었다. 소련이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당에서 설립한 사관학교의 생도들을 주축으로 군을 통솔한다’는 소련식을 모방해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황포군관학교(黃<57D4>軍官學校)를 설립하고, 이듬해 7월 국민정부의 깃발을 내걸었다. 군사위원회는 각 성에 산재하며 지역의 이름을 딴 지방군들의 명칭을 ‘국민혁명군’으로 통일시켰다. 줄여서 ‘국군’이라고 불렀다. ‘반제·반봉건’이라는 말에 홀린 열혈청년들이 속속 광저우에 집결했다.



전국을 강타한 북벌의 열기는 중국에 와있던 한국 청년들의 열정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중국혁명의 완성이야말로 조국 독립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광저우로 가자”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았다. 수백 명의 한국인 청년이 중국혁명의 새로운 중심지로 모여 들었다. 그중에는 북벌에 참가하기 위해 군벌부대의 군적을 버린 김무정과 최득권(후일의 최현) 같은 군사 전문가들도 있었다. 한국인들의 항일투쟁을 지지하는 혁명정권이 들어서 있고 중국공산당의 활동이 합법화된 광저우는 이들의 낙원이었다. 광둥항공학교·중산대학 등 새로 문을 연 대학도 많았다.



황포군관학교에는 한국인 생도가 없는 기가 없었다. 특히 1기에서 5기까지가 그랬다. 교직원과 학생을 합하면 이범석·최석천(후일의 최용건)·박시창·양림·김원봉·박효삼 등 200명을 웃돌았다. 교장 장제스의 부관 중에도 한국인이 있었고 생도대장도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26년 7월 9일 광둥을 출발한 북벌군과 대오를 함께했다. 국민혁명군이 우한(武漢)을 점령한 후 분교를 설립했을 때도 다수의 한국 청년이 입학을 자원해 북벌에 참여했다.



27년 4월 장제스는 상하이에서 정변을 일으켜 제1차 국·공 합작을 파열시켰다. 국·공이 다시 분열되자 국민혁명군 진영의 한국인 혁명가들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북벌을 시발로 49년 신중국이 탄생하기까지 모든 고비마다 한국인 혁명가들은 중국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마오쩌둥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찬란한 오성홍기에는 조선 혁명가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며 이들을 찬양했다.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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