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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림으로 깨끗한 변기 만드는 게 넛지”“정치공작 같은 나쁜 넛지는 해선 안 되죠”

BBC ‘경배5’(경제경영 배후의 과학서 5선)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이다. 오늘은 미국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의 리처드 탈러 교수와 하버드대학 법학대학원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다윈의 서재에 초대되었다. 그들의 『넛지』 때문이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21세기 다윈의 서재<18>-탈러선스타인 공저 『넛지』

다윈=탈러 선생, 어서 오세요. 선스타인 선생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탈러=글쎄 말입니다. 그 친구는 지금 오바마 정부의 정보규제국을 책임지고 있는데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나 봐요.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전해 달랍니다.

다윈=이제까지 초대손님 중 현실정치의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분들인 셈인데요, 역시 오바마 정부가 바쁘긴 한가 보네요.

탈러=전국가적인 ‘넛지 정책’을 만드느라 아주 바쁜 것이니 기쁜 일이죠.

다윈=여태까지 내 서재에 온 저자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참신한 단어(들)을 잘 찾아내거나 잘 조합해낸다는 거예요. 첫 손님인 윌슨의 ‘통섭’에서부터 지난주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까지, 맞춤형 단어들을 어찌 그리도 잘 발굴하는지…. 당신들의 ‘넛지(nudge)’도 딱 그거죠. 대체 무슨 뜻이오?

탈러=원래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를 찌르다’라는 뜻인데요, 행동경제학에서는 ‘타인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죠.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남자화장실 소변기 중앙에는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어요. 이게 남자의 승리욕을 자극하나 봅니다. 이 표적을 맞히려다 보니 소변기 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변량이 80%나 줄었다는군요. 이게 바로 넛지입니다. 금지나 명령이 아닌 부드러운 개입!

다윈=그거 참 기발한 발상이네요. 예전에는 ‘한 발 앞으로’와 같은 명령조 문구였다가 최근에는 ‘성숙한 시민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와 같이 부드러워지긴 했는데, 소변기에 파리 그림이라니 정말 참신해요. 설마 거기에 ‘파리를 조준하시오’라는 명령은 없었겠죠. 하하.

탈러=이런 넛지들은 전문용어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 불립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용해 부드럽게 간섭하지만 여전히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뜻이죠. 가령, 학교 주변 도로에 ‘속도를 줄이시오’라고 명령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지만, 과속 방지턱을 만들어 놓는 것은 넛지입니다. 자기 차를 망가뜨리고 싶은 운전자는 없잖아요.

다윈=지난번 소개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간섭주의와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학 사이에서 흥미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표현보다는 ‘넛지’가 100배 낫습니다. 전문가들이 어려운 전문용어를 만들고 자기들끼리만 자폐적으로 쓰는 것에 ‘넛지’ 같은 용어를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넛지 아닙니까? 부드러운 개입! 하하.

탈러=선생님께서 멋진 넛지를 날리시네요. 그런데 그런 부드러운 개입이 있으려면 인간 자체를 잘 알아야 해요. 그래야 똑똑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윈=옳거니! 그게 바로 내가 선생을 부른 이유예요.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수상 소감으로 했던 말이 생각나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가 정작 경제학 과목은 하나도 들은 적이 없다는 거였어요. 대신 경제학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아무개에게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땐 그 아무개가 누군지 잘 몰랐었는데, 알고 보니 탈러 선생이더군요.

탈러=겸양의 말씀이시죠. 1970년대 후반에 1년간 저희는 우연히 스탠퍼드대학에 함께 있게 되었어요. 그때 카너먼과 늘 함께 연구했던 아모스 트버스키도 있었죠. 그 두 분과의 만남이 오히려 제 학문적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흔히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저를 지목하곤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제 뒤에는 그 두 분이 있다고 해야 할 거예요. 제가 아는 모든 심리학은 그들로부터 배운 겁니다.

다윈=이것 참 아름다운 광경이네요. 카너먼은 자기 같은 심리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경제학과 심리학의 통합을 주도한 당신과 당신 주변의 젊은 학자들 때문이었다고 하던데요.

탈러=감사할 뿐이죠. 하지만 제 책을 읽어보셔서 아실 거예요. 넛지 논의의 이론적 틀은 그들의 ‘발견법 및 편향’ 연구이지 않습니까? 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인지적인 실수를 범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죠. ‘가용성 발견법’의 예를 들어보죠. 이건 사람들이 관련 사례들이 얼마나 쉽게 떠오르느냐(가용하냐)를 토대로 리스크의 경중을 판단한다는 거예요. 요즘 신종 플루가 대유행인데요, 현재 그것이 여느 독감보다 치사율이 더 높지 않은데도 연일 뉴스에서 사망 소식을 방송하고 학교가 휴교도 하고 그러니까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거죠. 이는 ‘가용성 편향’으로서 실제로는 잘못된 판단이죠.

다윈=하지만 신종 플루가 정말 위험한 거라면, 그런 편향을 잘 이용해서 국민 보건을 지키는 게 바로 넛지 아닙니까?

탈러=역시 다윈 선생님이십니다. 방송에서 건강을 위해 손을 씻으라고 아무리 ‘명령’해 봤자 별로 꿈쩍하지 않아요. 대신 신종 플루로 인한 사망 사례들을 자세히 방송해 보세요.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틀림없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부드러운 간섭도 지나치면 국민을 잘못된 공포에 빠뜨리기도 하죠. 그러니 우리는 ‘선을 위한 넛지(nudge for good)’를 해야 해요. ‘정치공작’ 같은 나쁜 넛지는 안 됩니다만, 좋은 넛지는 예술에 가깝습니다.

다윈=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심리학 연구가 넛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네요. 그나저나 그 둘은 끝장 토론 뒤에 동전 던지기로 논문 저자 이름의 표기 순서(카너먼과 트버스키, 또는 트버스키와 카너먼)를 정했다던데, 당신과 선스타인은 어떻게 했나요?

탈러=동전 던지기를 여러 번 하면 할수록 앞면과 뒷면이 1대1로 공평하게 나온다는 사실 아시죠? 그들은 그걸 이용해 넛지한 거예요. 저희는요? 비밀이에요. 하하.


※탈러 교수는 시카고 경영대학원 아시아 동문회 행사를 위해 이번 주에 한국을 방문했었고, 국가경영전략연구원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다음에는 ‘과전3’(과학자 전기 베스트3) 시리즈의 첫 번째로 『아인슈타인, 피카소: 현대를 만든 두 천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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