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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사랑의 뿌리

“사랑니를 뽑으라고 했단 말이죠?”
의사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2년에 한 번씩 받는 건강검진에서 사랑니를 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불편하지 않겠지만 미리 빼두는 게 좋다며. 그래서 찾아간 치과였다.

“네. 그런데 이 뽑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금방 끝나요.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 정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의사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이병헌처럼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커피 한 잔을 얼마나 오랫동안 마시는 사람인지. 치과 의자에 앉아 나는 심호흡을 하며 사랑니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생각했다. 사춘기 즈음에 나는 이니까 그랬으리라. 사랑니를 빼라고 한 건 사십대에게 사랑이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일까.

의사의 장담과 달리 사랑니는 잘 뽑히지 않았다. 역시 사랑의 뿌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의사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실내 온도는 19도인데 의사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의사는 한 손으로 내 머리를 누르며 다른 손으로는 발치기로 사랑니를 뽑느라 씩씩거린다. 나는 고집스러운 내 사랑니가 부끄러웠다.

사랑니는 두 번이나 부러지고도 뽑히지 않았다. 급기야 의사는 이소룡처럼 스텝을 밟는다. 그건 내 가슴을 발로 누르고 이를 뽑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답답함에서 오는 것처럼 보였다.

의사는 잇몸을 째고 남아있는 이를 덜어내자고 한다. 여러 번 찢고도 잘되지 않자, 의사는 내 이를 대못처럼 끽끽 뽑으려 한다. 자르고 다시 마취하고 또 뽑으려 해도 이는 잘 나오지 않는다. 사랑의 뿌리는 얼마나 거대한가? 지구가, 온 우주가 꽉 엉겨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신음 소리를 냈다. 고군분투하는 의사 앞에서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아아, 하는 신음밖에 없다는 게 나는 부끄러웠다. 이를 뽑는 행위는 사랑을 나누는 것과 닮았다. 땀을 흘리며 헐떡이고 또 신음 소리를 내는 행위. 한 시간 반 넘게 다소 폭력적인 사랑을 나눈 의사가 마침내 환호성을 질렀다.

“뽑았어요!”
이제야 커피 한 잔을 다 마신 것이다.
막상 뽑은 사랑의 뿌리는 초라했다. 기념 삼아 보관하게 달라고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은 그의 전리품이니까.의사는 다음 주에 왼쪽 사랑니도 뽑으러 오라고 했지만, 나도 그러겠다고 예약도 했지만, 가지 않았다. 6년이 지나도록. 가끔 나는 그 병원 앞을 지나간다. 그때마다 사랑니가 뽑힌 곳을 혀로 더듬어본다. 이병헌처럼 웃던 그 의사를 생각하며.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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