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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씨 11년 만에 낸 평론집서 작가들에 쓴소리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모든 잡념을 여과 없이 속기한 컴퓨터 시대의 안이한 수다…. 소설가로서의 기본적 역량 부족을 ‘실험정신’으로 포장해 놓은 난해한 산문. 단편소설을 억지로 뻥튀기한 장편….”



“스스로 흡족 못하면 작품 발표 않는 깡 있어야”
“청탁 받은 글 쓰는 데만 급급해 좋은 소설 드물어”

깔끔하고 오류 없는 문장으로 알베르 카뮈, 미셸 투르니에 등 프랑스 문학의 빛나는 이름을 국내에 소개해 온 번역가이자 시인·문학평론가인 김화영(68·사진)씨. 그가 11년 만에 낸 평론집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문학동네)의 한 대목이다. 근래 한국 소설의 양적 증가는 놀랍지만 막상 끝까지 읽게 하는 좋은 작품은 드물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다.



인용문은 1995년 출간된 김병언씨의 소설집 『개를 소재로 한 세 가지 슬픈 사건』을 평한 글 속에 있다. 그러니 시차가 있을 수 있다. 혹 ‘어르신’의 고리타분한 쓴소리인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과장된 말”이라는 단서를 바로 이어 붙이긴 했지만 평론집 머리말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이 나라에서 발표되는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오후 서울 옥수동 김씨의 자택을 찾았다. 김씨의 ‘요즘 생각’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김씨는 “인간의 삶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획이 균형을 이뤄야 온전해진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기억이 없으면 정서적으로 불안해진다”는 것. 헌데 우리 사회의 재개발·재건축 바람은 삶의 흔적(기억)을 산산이 깨부순다. 대표적인 게 서울시의 피맛골 재개발 계획이다. 김씨는 “(재개발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뭐 이런 발상이 다 있나 싶었다”며 “평론가 유종호씨와 피맛길 골목을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어 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은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디테일을 기록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김씨의 말투는 격정적이었다. 문학으로 화제가 옮아가자 9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당시 김씨는 프랑스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하지만 세계문학에 비춰 손색 없는 장편 다섯 편 이상을 쓴 한국 작가를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청준·박완서·이문열 정도였단다. 김씨는 “그런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빈곤의 주범으로 유망한 작가의 재능을 탕진케 하는 한국 문학의 ‘작품 생산 구조’를 꼽았다.



그는 “소설 조금 쓴다 싶으면 문예지들이 잇따라 작품 청탁을 한다. 작가가 거기에 따르다 보면 원고료 수입이 생기고 2, 3년 뒤면 단편집으로 묶을 수도 있어 언뜻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작가를 망치는 마약 같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문학 잡지가 300종이 넘을 정도로 많다 보니 작품이 곰삭을 시간을 주지 않고 뽑아 쓰는 데 급급해 결국 작가를 소진시킨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김씨는 “니체가 말한 ‘성격의 힘’ 같은 게 필요하다”고 했다. 작가 스스로 흡족하지 않으면 발표하지 않겠다는 ‘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르기 쉽지 않겠지만 수긍이 가는 주문이었다.



글=신준봉,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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