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그때 오늘] “한국 경제는 도약 단계” 주장한 로스토 방한

1965년 한국을 방문한 로스토 박사(안경 쓴 이)가 홍종철 공보부장관과 악수하고 있다(국가기록원 소장 사진).
1966년 10월 29일 존슨 미 대통령과 함께 로스토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내한했다. 로스토의 방한은 65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존슨 대통령과 로스토 보좌관은 방한 직전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있었던 베트남전쟁 참전국 회의에 참석한 직후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의 기본적인 목적은 더 많은 전투부대 파병을 한국에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67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공식적인 파병 요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정부 관료들은 로스토 보좌관을 통해 한국의 국토개발 사업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요청하고,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파견한 박정희 정부에 대한 감사와 지지를 표시했다.



로스토는 원래 경제사학자였다. 그는 『경제성장의 제단계: 반공산주의 선언』이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했는데,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경제발전 과정을 단계화하려고 했다. 로스토는 이를 통해 선진국의 경제성장 유형을 구분하면서, 후진국도 선진국이 했던 것과 같은 중요한 정책들을 실시한다면 경제성장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의 이론 중 핵심은 경제성장을 위해 ‘도약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지표면에서 달리는 단계와 하늘을 나는 단계 사이에 ‘도약’이라는 질적인 변환이 필요한 것처럼 후진국이 선진국처럼 발전하기 위해서도 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로스토는 한국이 ‘도약 단계’에 있다고 주장해 일약 스타가 되기도 했으며, 그의 도약 이론은 이후 대학 입시의 단골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관료로서의 경험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그는 베트남에 대한 깊숙한 개입을 주장한 존슨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다. 그는 도약 이론을 존슨 정부의 대외정책에 이용해, 후진국이 도약 단계를 거치면 더 이상 공산주의가 그 지역에서 발붙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에 대한 깊숙한 개입과 경제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에서의 실패는 로스토의 말년을 어렵게 했다. 그는 존슨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매사추세츠공대(MIT)로 돌아가려 했지만, 반전 시위대는 그의 복귀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존슨 대통령과 함께 텍사스 오스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한국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바로 그의 이론이 성공한 몇 안 되는 실험장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