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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96> 국선전담변호사 제도

영화 ‘일급 살인’에서 주인공인 변호사(크리스천 슬레이터)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국선변호사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불성실하게 변론하는 국선변호사가 종종 눈에 띕니다. 5년 전부터 변호사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대신 국선 사건만을 맡게 하는 국선전담변호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국선전담변호사 제도와 활용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가난한 피고인들 위해 ‘착한 변호사’ 122명이 뜁니다

최선욱 기자



남현우 국선전담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는 피고인과 상담을 하고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2004년 11명으로 출발한 뒤 크게 늘어 현재 27개 법원에서 122명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 고법·서울중앙지법 사건을 담당하는 30명의 국선전담변호사들은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빌딩에 마련된 공동 사무실을 쓰고 있다. [김상선 기자]
동네 주민을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7월에 기소된 남성 A씨(47)는 구치소에서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술에 취해 자신의 뺨을 마구 때리는 동네 주민 B씨(59)를 밀친 것이 화근이었다. B씨는 넘어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쳐 숨졌다. 고의로 살인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A씨는 “사람을 죽인 놈이 무슨 변명을 하겠느냐”며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변호사를 구할 형편도 되지 않았고, 그를 도울 가족은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누나가 유일했다. 그런 A씨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국선전담변호인인 남현우 변호사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남 변호사는 A씨와 동네 주민 등을 상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숨진 B씨의 평소 행동 등을 조사해 증거로 제시했다. 결과는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B씨의 행동을 제지하려는 의도가 A씨에게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사건에서 7명의 배심원은 모두 무죄 평결을 내렸다. 정당방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A씨는 구속 두 달여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남 변호사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주장하지 못하던 피고인에게 도움이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소한의 변론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대한민국 헌법 12조 4항)



이 헌법 조항에 의해 국가가 형사피고인을 돕기 위해 선임한 변호인을 국선(國選)변호사라고 한다. 형사재판에 회부됐지만 경제적 형편 등으로 변호인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변론을 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일종의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국선 사건이 ‘큰 돈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의 성실한 변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법원은 형사사건 당사자에게 질 높은 변호 서비스를 제공해 주기 위해 2004년부터 국선전담변호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변호사들을 선발해 이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국선 사건만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월급 800만원 … 선발 경쟁률 수십 대 일



국선전담변호인 제도는 2004년 9월 시행에 들어갔다. 처음엔 11명의 국선전담변호인이 서울중앙·인천·수원·대구·부산·광주 등 6개 법원에서 시범적으로 활동했다. 2005년 3월에는 20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전국에 122명의 국선전담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매월 80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세금을 내기 전의 금액으로 중견 로펌 수준이다. 월 50만원의 사무실 운영비 지원금 등 각종 실비 지원도 받는다. 비현실적인 급여 탓에 성의 없는 변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반영된 결과다. 2년 단위로 계약을 하며, 본인이 원할 경우 법원의 판단을 거쳐 계속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사건 처리에 대한 보고서를 반드시 사법부에 제출해야 한다.



최근에는 국선전담변호사를 선발할 때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이르기도 한다. 변호사 업계의 불황과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반영돼 국선전담변호사의 선호도도 올라가는 것이다. 지난 1월 40명의 국선전담변호사를 뽑았는데 지원자는 178명에 달했다. 4월 3명의 추가모집에서는 94명의 변호사가 지원해 31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이영훈 형사심의관은 “사법연수원 성적이 높은 변호사가 지원을 하는 등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선전담변호사의 1인당 사건 수는 25건 정도다. 국선전담 변호사를 늘리면서 적정한 수준이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선변호 사건을 국선전담변호사가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변호사들도 법원을 통해 국선변호 사건을 맡는다. 지난해 7월부터는 공탁금관리위원회 지원금을 통해 국선전담변호사들에게 무상으로 사무실과 운영경비가 지원되고 있다.



사건 당사자 청구나 재판부 직권으로 선정



국선전담변호인은 재판부 직권이나 사건 당사자의 청구를 통해 선정된다. 앞서 본 A씨 사건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지정한 경우다. 형사소송법(33조 1항)은 피고인이 ▶구속된 때 ▶미성년자일 때 ▶70세 이상일 때 ▶농아자일 때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을 때에 변호인이 없으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건 당사자가 국선전담변호인을 청구할 경우에는 선정 청구서에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사유를 적어 법원에 내야 한다. 전체 신청 중 90% 이상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당 사건 재판부에 배정된 국선전담변호사가 변호인이 된다. 피고인이 다른 변호인을 원할 경우엔 국선변호인 목록에서 희망하는 변호인의 순위를 적어 낸다. 명단에 없는 사람에게 국선변호 받기를 희망하면 따로 그 변호사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을 수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렵지 않은 사람도 재판장이 허락하는 경우에는 국선전담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오래된 불신 깰까



국내에서는 국선변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뒤늦게 싹텄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1954년 국회에서 “피고인에게 변호인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 입장에서 사건마다 변호인을 세우려 하면 상당한 금액이 들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검사에게 국가가 급여를 지급하는데 피고인 쪽에도 변호사 비용을 주면 국가로서 큰 부담이다”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2.1%는 국선변호 제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선변호인은 “선처를 바랍니다”라는 한마디로 변론을 마친다고 해서 ‘10초 변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국선전담변호인 제도를 활성화함으로써 국선 변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일반인들의 불신을 최소화할 수 있어 형사재판 전반의 신뢰도를 높일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소외 계층 위해 변호사 100명 더 필요”



최근에는 국선전담변호사 인원을 더 확충하고 수사 단계에서도 국선 변호가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는 영장실질심사를 제외하고는 기소 전 형사피의자에 대해서는 국선변호가 제공되지 않는다.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사람은 재판을 받기 전까지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변호사가 형사 절차에서의 권리와 혐의에 따라 예상되는 처벌 등을 알려줄 수 있으면 허위 자백 등으로 억울한 피의자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가 조사를 받는 오랜 시간을 국선변호인이 돕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와 여당이 구속 전 피의자를 국선변호 대상으로 확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데 합의한 적이 있지만 실제 도입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연간 국선변호 예산은 337억여원이다. 국민 1인당 국선변호 혜택은 700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2002년에 1인당 국선변호 지출액이 원화 기준으로 1만2000원을 넘었고, 영국의 잉글랜드·웨일스주도 1인당 4만4000원 이상의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 등에서는 국선변호 지출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클린턴 정부 때 법무 장관을 지낸 재닛 리노는 “미국에서 형사제도가 얼마나 정의에 가까운지는 주로 변호의 질적 수준에 의해 결정되고, 변호의 질적 수준은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돈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전체 피고인의 25.5%에 그치고 있다. 매년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전체 피고인의 약 70%가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는 일본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미국 국민들 역시 일본과 비슷한 비율로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는다. 대법원 측은 “우리나라의 인구와 전국 법원의 형사사건 건수를 고려할 때 약 100명의 국선전담변호사가 더 있어야 소외계층에 적정 수준의 방어권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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