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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장소·의제 놓고 충돌 가능성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시내 만수대거리에 새로 완공된 주택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1일 정확한 촬영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꼬리를 물던 남북 비밀접촉설이 22일에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준비 접촉’ 관측으로까지 번졌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거듭된 부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남북 정상회담이란 메가톤급 이슈는 더욱 불길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이틀 전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이상득 의원의 접촉설을 다룬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하던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비껴갔다.

정황을 종합하면 어떤 형태로든 남북 간에 ‘유의미한’ 접촉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감한 사안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의 비공개 만남이 시차 없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점에서다. 앞서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 때 준비단계에서 보안이 샌 경우는 없었다.

일단 남측에서는 정상회담 준비를 다룰 위치에 있는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선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김양건 부장이 나왔다면 정부 측에서 장관급이 나설 텐데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서울에 있었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대통령의 해외순방 수행 중이었다”고 말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거론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측 인사는 아니고 다른 라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위임을 받을 수 있는 민간인, 특히 기업인이나 전직 고위 인사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0년 정상회담 때도 2년 앞서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같은 현대의 터닦기와 물밑 작업이 있었다.

논의 내용과 관련, 우선적으로 거론될 수 있는 건 정상회담의 장소 문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평양 정상회담 때 6·15 공동선언에 “적절한 시기 서울을 방문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7년 뒤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의 만남도 평양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정이 다르다.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원칙 있는 대북 접근을 공언해온 마당에 또다시 방북 회담을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북한은 김 위원장의 경호 문제 등을 내세워 ‘평양 개최’를 고집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의제와 관련해서도 충돌했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고위급회담 개최 시 핵 문제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그렇지만 핵 문제는 북·미 간 이슈라고 주장해온 북한으로서는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북한의 경제 지원 요구가 발목을 잡았을 공산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접촉이 이런 깊이로 논의가 이뤄졌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제기된다. 의제와 장소 문제를 다룰 정도면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토대로 수차례 접촉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0년 봄 박지원 당시 문화부 장관과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싱가포르 등지에서 세 차례 접촉해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의 경우 ‘타진 수준’의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최근 잇따른 정상회담 개최설에 대한 미덥지 못한 대응으로 혼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 결과 설명 과정에서 불거진 남북 정상회담 관련 한·미 엇박자나 김양건 통전부장의 베이징 체류를 둘러싼 의혹에 어설프게 대응했다는 얘기다. 정상회담을 투명하고 국민 공감대가 마련되는 상황에서 추진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결국 북한의 ‘정상회담 카드’에 이끌려 비밀 접촉에 나섰다가 모양새를 구긴 형국이 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올해 남북 관계 주요 일지

▶ 1.17 북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대남 ‘전면적 대결태세 진입’ 발표

▶ 3.30 북, 체제 비판 혐의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체포

▶ 4.5 북, 장거리 로켓 발사

▶ 5.15 북, 남측에 ‘개성공단 관련 법규 계약 무효’통보

▶ 6.13 북, 우라늄 농축 작업 착수 및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선언

▶ 7.2 남북,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한 3차 당국 간 실무회담

▶ 7.30 ‘800 연안호’ 나포로 선원 4명 억류

▶ 8.10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

▶ 8.13 개성공단에서 억류된 근로자 유성진씨 136일 만에 석방

▶ 8.15 이명박 대통령, 8·15 경축사 통해 새로운 한반도 평화 구상 천명

▶ 8.16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 8.17 북, 현대그룹과 합의한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등 5개항 발표

▶ 8.21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계기 북한 조문 사절단 방남

▶ 8.23 이명박 대통령, 북 조문사절단 접견

▶ 8.27 남북 적십자회담,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합의

▶ 9.7 북, 임진강댐 무단 방류로 남측 민간인 6명 사망

▶ 9.26 남북 이산가족, 23개월 만에 상봉

▶ 10.12 남, 북에 당국자회담 제의. 북은 동해로 단거리 미사일 5발 발사

▶ 10.15 북, 남북 당국자회담에서 무단 방류 피해 유족에 첫 조의

▶ 10.16 북,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첫 인도적 지원 요청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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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