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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눈앞 성과보다 장기적 업적 중시

2008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시상식이 끝난 뒤 스웨덴 스톡홀름 왕궁에 모여 공식 만찬을 즐기는 모습. [중앙포토]

12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확정되면서 2009년 노벨상 수상자 13명이 모두 발표됐다.<본지 10월 13일자 2면> 우리나라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이후 올해까지 수상자를 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노벨상의 의미를 알아보고 우리나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할 점 등을 생각해 보자.

◆생각 키우기

①노벨상은 왜 만들어졌나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사람을 해마다 선정해 상을 주십시오.” 다이너마이트의 왕이자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던 알프레드 노벨(1833~96)의 유언이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판매해 엄청난 부를 쌓은 과학자이자 사업가였다. 당시 대규모 공사나 광산 개발에 사용되던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폭약은 마찰이나 충격에 민감해 대형 사고가 잦았다. 파나마 운하 공사 현장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던 기선이 폭발해 74명이 사망했는가 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창고 폭발로 14명이 폭사했다.

다이너마이트는 니트로글리세린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폭탄이었다. 안전성을 강화해 쉽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노벨의 바람대로 다이너마이트로 인해 공사장의 인명 피해는 줄었지만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다이너마이트가 전쟁터로 흘러들어가 강력한 살상 무기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를 지켜본 노벨은 전 재산의 94%인 3100만 크로네(현재 기준 40억여원)를 사회에 환원하고 인류를 위한 상을 제정했다.

②어떻게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됐나

노벨상은 인지도 자체가 특별하다. 노벨상의 국제적인 명성과 권위는 어떤 상도 따라가지 못한다. 우선 알프레드 노벨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죽음의 상인’이 평화상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노벨상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됐다.

제1회 노벨상 수상식은 1910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X선을 발견한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에게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2년 뒤엔 누추한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던 퀴리 부부가, 1921년에는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쟁쟁한 수상자들이 노벨상의 전통과 권위를 높여간 것이다.

‘후보자의 국적을 절대 문제삼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성격도 노벨상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노벨상은 세계 최초로 국경을 초월한 후보자를 선출했다. 덕분에 해마다 상을 수여하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낸 후보자들을 계속 찾아낼 수 있었다.

③우리나라에서 수상자를 내려면

노벨상은 한 가지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헌신한 끝에 얻을 수 있는 결실이다.

노벨상 수상자는 올해로 816명이 배출됐고 그중 309명(38%)이 미국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노벨상 독식을 비아냥거리지만 노벨위원회와 학계에서는 노벨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미국의 환경을 강조한다. 연구자들이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를 찾아 도전하며 떠오르는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미래 노벨상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지름길인 셈이다.


박형수 기자

www.jnie.co.kr
에 생각키우기와 매일 NIE가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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