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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화산군 리용상

1995년 화산(花山) 이씨 종친회 대표들이 베트남을 찾았다. 화산 이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 때 베트남(안남국)에서 망명한 이용상 왕자다. 현지 언론은 “끊겨버린 리 왕조의 왕통이 부활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종친회 대표들을 맞으러 당 서기장 등 베트남 3부 요인이 모두 나왔다. 베트남 국적도 부여했다. 국빈 이상의 대우였다.

리 왕조는 200여 년 동안 번성했던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첫 왕조이기도 하다. 베트남 국민은 지금도 ‘리 왕조의 정통성’을 말한다. 그런데 중국계 지배자에 의해 멸족된 줄 알았던 리 왕조의 후손들이 3600여㎞나 떨어진 한국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후 화산 이씨 대표들은 매년 리 왕조 건국기념식에 초청받아 간다. 2002년에는 하노이에서 이용상 왕자의 일대기를 다룬 오페라 공연까지 열렸다.

이용상 왕자는 리 왕조가 멸망할 때 배를 타고 탈출해 황해도 화산에 당도했다. 왕자는 해적에게 나포된 옹진 주민들을 구했고 몽골군이 침입하자 토성을 쌓아 다섯 달 동안 버텼다. 몽골 장수가 화친 선물이라며 황금 상자 안에 자객을 숨겨 보내는 ‘트로이 목마’ 작전을 썼을 때도 이를 간파하고 상자 안에 끓는 물을 부어 자객을 처리한 뒤 되돌려 보냈다. 몽골군은 ‘신령한 장군’이라고 혀를 내두르며 물러갔다. 베트남 왕자 이용상은 그렇게 고려의 ‘화산군(花山君)’으로 자리 잡았다. (박기현,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성씨』)

‘리 왕조의 후예’ 화산 이씨들의 존재가 베트남에 늦게 알려진 이유는 한국과 오랫동안 국교가 단절됐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과 공산화의 그늘이다. 하지만 92년 말 외교 수립 이후 양국 관계는 빠르게 발전했다. 경제 협력만이 아니다. 베트남은 이미 90년대 후반에 장동건·김남주 열풍으로 떠들썩했던 ‘원조 한류’ 국가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약 4만 명에 이르는 ‘사돈의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하노이에서 응우옌 민 찌엣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응우옌 주석은 “한국은 친구가 아닌 형제의 나라”라며 “양국은 이해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넘어 사랑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화산군’과 고려의 윈-윈 관계가 800년 역사를 뛰어넘어 재현되는 것인가.

구희령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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