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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밑 ‘방사성 폐기물선’ 의혹 푼다

이탈리아 정부가 20여 년간 풍문으로 떠돌던 마피아의 조직적인 방사성 폐기물 선박 수장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지중해 미스터리’로 불려온 이 의혹은 마피아가 1970년대부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정부·기업으로부터 방사성 폐기물과 유독성 화학 폐기물을 넘겨받은 뒤 이를 실은 선박 수십 척을 지중해상에서 몰래 폭파해 수장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주 폐기 장소로 알려진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해안 인근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유독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증폭됐다.

21일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 해군 탐사선은 수중음파탐지기 등을 동원해 칼라브리아 해안에서 20㎞ 떨어진 해저 500m 지점에서 첫 탐사 작업을 시작했다. 해군은 이곳을 시작으로 범위를 넓혀 가며 수중 탐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사건 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사 당국은 90년대 초부터 잇따른 화물선의 침몰이 마피아와 외국 정부·회사 간의 모종의 거래와 관련 있다고 보고 수사해 왔다. 날씨가 맑은 날 구조 요청이나 선원 실종 없이 침몰한 화물선 30여 척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94년 칼라브리아주 검찰은 87년 이 지역 해안에 침몰한 화물선 ‘리겔’이 폐기물 처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폭파됐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마피아의 살해 위협과 예산 부족으로 화물선의 침몰 위치조차 찾지 못했다.

실제로 현장조사 책임자였던 연안 경비대의 나탈 드 그라지에 대령은 임무 수행 중 갑자기 사망하기도 했다. FT는 정부가 밝힌 그라지에 대령의 공식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그의 동료들은 마피아에 의해 독살됐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이후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이탈리아 양대 마피아 조직에 속하는 ‘엔드란게타’의 보스였던 프란체스코 폰티(61)가 자신의 범행을 증언하면서다. 그는 92년 노르웨이로부터 건네받은 120배럴 분량의 방사성 폐기물을 ‘쿤스키’라는 화물선에 실어 폭파시켰다고 진술했다. 마약 거래 등 혐의로 가택구금 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폰티는 감형받기 위해 검찰에 적극 협조했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79년부터 20여 년간 이탈리아·독일·스위스·러시아의 정보기관과 제약회사로부터 방사성 폐기물과 유독성 화학 폐기물 등을 받아 40척의 화물선에 실어 지중해와 아프리카의 케냐·소말리아 앞바다에서 ‘처리’했다고 말했다. 특히 ‘로소’라는 화물선은 발암물질로 알려진 방사능 동위원소 세슘137(Cs137)을 실은 채 수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유럽 각국은 자국 정보기관이 부도덕한 방사성 폐기물 수장 사건에 연루됐다는 폰티의 증언이 나오자 이번 수중 탐사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해당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 무단 투기와 이에 따른 환경 오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칼라브리아 해안 인근 주민들의 암 발생이 급증한 이유가 수중 방사성 폐기물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어 대규모 국제소송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스더 기자

◆방사성 폐기물=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방사성 물질이다. 핵연료로 사용하고 난 뒤의 핵연료와 이것의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95% 이상 재활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폐기물로 보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용된 공구·장갑·덧신·작업복과 관련 산업체·병원·연구기관에서 나오는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드럼에 시멘트로 고정시켜 폐기물처리장에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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