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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가 강요한 ‘교육칙어’, 모든 학생 의무적으로 암송

1910년대 보통학교 어린이들의 돗자리 짜기 실습. 교육칙어는 학문과 기예를 함께 강조했지만 한국인에게는 단순 기능을 가르치는 데에만 역점을 두었다(『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
1911년 10월 23일 일왕은 조선 총독에게 교육칙어를 내려주었다. “나의 신민들은 마땅히 충효를 다해야 하고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대대로 아름다움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우리 국체의 정화이며 교육의 연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민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하며 부부가 화목하고 친구는 서로 믿으며, 스스로 삼가 절도를 지키고 이웃을 널리 사랑해야 한다. 학문을 닦고 기예를 배우며 지능을 계발하고 덕을 이루어, 공익에 널리 이바지하고 국헌을 존중하며 국법을 준수해야 한다. 위급할 때에는 스스로 몸을 바쳐 천지 간의 무궁한 황운을 뒷받침해야 한다.”

1890년에 제정된 일본 교육칙어는 유교의 삼강오륜에 기대어 일왕에 대한 충성심을 고무하는 한편 공익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여 일본의 천황제 군국주의를 교육면에서 뒷받침했다. 조선총독부는 학제나 교과 과정, 교과 시수 등 모든 면에서 차별적인 교육 정책을 폈지만 겉으로는 일본인과 한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한국인용이든 일본인용이든 모든 교과서에 빠짐없이 게재된 교육칙어가 그 상징이었다. 교육칙어 암송은 모든 학생의 의무였다.

1968년 제정되어 역시 각급 교과서에 빠짐없이 수록된 국민교육헌장도 ‘국가에 헌신하는 국민 만들기’라는 점에서 교육칙어와 닮은 점이 많았다. 모든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무거운 짐을 졌고, 모든 국민은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고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는 일과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는 일 사이에 반드시 긴밀한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무렵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지 못하는 것도 벌 받을 충분한 사유였다.

교육칙어는 일본 군국주의와 함께, 국민교육헌장은 군사정권과 함께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슬그머니 교육 현장에서 사라졌다. 역사의 진전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지만 덩달아 교육의 공적 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사라져 버린 듯하다.

교육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공교육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합의 기반이 협소한 상황에서는 어떤 해법을 내놓아도 남의 다리 긁는 격일 뿐이다. 이제라도 군국주의적·국가주의적 교육 강령을 폐기한 빈자리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새 교육 강령을 채워 넣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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