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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어제를 만나다 ⑧ 안동

경북 안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유교의 고장이다. 안동 권씨, 안동 김씨, 풍산 유씨, 진보 이씨, 고성 이씨, 안동 장씨 등 내로라하는 권문세가가 안동을 기반으로 한다.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면 ‘영남 인재의 절반은 안동에서 나왔다’는 말 또한 틀리지 않는다. 하여 안동은 조선시대 권력과 사상의 태자리였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든다. 안동 선비가 조선 팔도를 거머쥐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오로지 퇴계 이황의 후광 덕분일까.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동은 고려 시대부터 권력의 복판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부터 안동은 국가 인력의 보고였으며 정신 문화의 수도였다. 그 생생한 흔적을 안동시 복판에서 만나고 돌아왔다. 안동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만 있는 게 아니다.

글·사진 손민호 기자


#고려의 흔적

역사책부터 펼친다. 그러니까 신라의 명이 쇠해 천하를 왕건과 견훤이 호령하던 시절, 둘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인다. 역사에서 병산전투라 이르는 곳, 그 병산이 지금의 안동 지역이다. 그 싸움에서 왕건이 크게 이겨 기세가 등등했던 견훤의 세력이 크게 위축된다. 그 전투에서 지금의 차전놀이가 유래했다.

왕건의 승리엔 안동 토착세력의 역할이 컸다. 김선평·권행·장정필, 이 세 명이 힘을 합쳐 왕건을 돕는다. 훗날 고려 태조에 오른 왕건이 그들을 공신으로 인정해 세 명에게 성씨를 부여한다. 하여 그들은 각각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 가문의 시조가 된다. 안동 양반의 중앙 권력 진출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 시조 셋을 함께 모시는 사당이 태사묘다. 현재 세 가문에서 돌아가면서 사당을 관리하고, 해설사가 상주한다.

태사묘 안에 보물각이 있다. 이 안에는 혁대·수저 등 공민왕 유물이 모셔져 있다. 공민왕 유물이 왜 여기에 있을까. 다시 역사책을 펼치자.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안동까지 피란을 온다. 그가 수도 개경을 비운 기간은 약 70일, 그중에서 30여 일을 안동에서 지냈다.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 시조를 모시고 있는 태사묘. 안동의 양반문화가 발원하는 지점이다.
그때 안동 사람들이 공민왕을 깍듯이 모셨단다. 대표적인 일화가 인덕왕후, 즉 노국공주와 얽힌 것이다. 피란 나온 왕후가 걸어서 물을 건너는 모습을 본 안동 사람들이 자신의 등을 밟고 왕후가 물을 건너게끔 했다. 그 일이 훗날 놀이로 변형됐고 그 놀이의 이름이 놋다리 밟기다. 그냥 다리가 아니라 놋다리인 까닭이 예서 밝혀진다.

공민왕은 안동의 호의를 잊지 못해 안동을 ‘안동웅부(雄府)’라 명하고 친히 글씨를 남긴다. 여기서 ‘웅’자가 중요하다. 대웅전의 ‘웅’이 바로 이 ‘수컷 웅’인데, 지극히 큰 것을 상징하는 단어다. 불교 국가 고려의 왕이 ‘웅’을 하사한 건 당시로선 최고의 찬사였던 셈이다. 공민왕의 친필 글씨가 안동시청 현관에 걸려 있다.

#전탑의 미스터리

유교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안동엔 의외로 뜻깊은 불교 유적이 꽤 많다. 개중에 전탑이 있다. 돌을 깎아 쌓은 탑이 석탑이라면, 구운 벽돌을 쌓아 올린 게 전탑이다. 현재 국내에 5개가 있는데 3개가 안동에 있다.

불교에서 탑의 원형이 전탑이다. 한국 탑의 특징이 석탑이고 일본 탑의 특징이 목탑이면, 중국 탑의 특징이 전탑이다. 벽돌을 쌓아올린 건 벽돌 안에 사리 등 귀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석가모니의 사리가 바로 이런 식으로 모셔졌다.

안동의 대표적인 전탑은, 신세동 7층 전탑과 동부동 5층 전탑이다. 앞에 것이 국보이고 뒤에 것이 보물이다. 신세동 7층 전탑은 고성 이씨 종가 임청각 옆에 서 있는데 높이가 16.8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신세동 전탑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안동에 솜씨 좋은 목수가 살고 있었는데, 그 재주를 시기한 도깨비가 내기를 건다. 도깨비는 하룻밤에 탑을 쌓고 목수는 하룻밤에 99칸 집을 짓자고 제안한 것이다. 결과는 물론 목수의 승리였다. 그 99칸 집이 탑 옆에 있는 임청각이다. 전설에서 짐작되는 바는 숭유억불 사상이다. 사람은 집을 짓고 도깨비가 탑을 쌓았다는 설정에서 유교를 높이 사고 불교를 깎아내리려는 의도 말이다.

고성 이씨 탑종파 종가 앞에 서 있는 신세동 7층 전탑. 높이 16.8m로 국내에서 가장 큰 전탑이다.
안동 전탑의 역사는 미스터리다. 유독 안동에 전탑이 많은 이유부터 명확하지 않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무엇보다 안동 전탑은 물가에 임한다. 안동역 주차장 옆에 있는 동부동 전탑이나 임청각 옆 신세동 전탑 모두 낙동강가에 위태로이 놓여 있다. 불교 유적이니 산 속에 있어야 마땅한데 왜 이 전탑은 산을 버리고 강으로 나왔을까. 추측만 난무할 따름이다.

#철가루 기와집 그리고 선비 정신

안동은 종가의 고향이다. 지금도 안동 곳곳에는 99칸짜리 한옥이나 그림 같은 풍경의 정자가 널브러져 있다. 서애 유성룡의 가옥이었던 옥연정사, 농암 이현보의 거처였던 농암종택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종가로 고성 이씨 종가 임청각이 있다. 보물 182호다.

임청각은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명당에 들어앉은 99칸 한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축소되고 왜곡된 모습이다. 규모는 70칸 정도로 확 줄었고 낙동강과 임청각을 중앙선 철로가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임청각 기와엔 늘 철가루가 쌓여 있다.

여기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일본이 국권을 강탈하자 당시 임청각의 주인이었던 석주 이상룡이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고 온 재산을 싸들고 간도로 떠난다. 그리고 중국 땅에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오른다. 석주 후손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해 고성 이씨 집안에서만 독립투사 9명이 배출된다. 이를 괘씸히 여긴 일제가 보복을 단행한다. 중앙선 철로가 임청각 마당을 가로지르도록 한 것이다. 하여 중앙선은 안동에 들어와서 직진하지 못하고 10㎞를 돌아서 간다.

다시 전설 하나. 임청각 안에 태실(胎室), 그러니까 아기를 낳는 방이 있다. 방 앞에 우물이 있어 ‘우물방’으로도 불리는데 그 방에서 정승 3명이 나온다는 전설이 고성 이씨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다. 하여 고성 이씨 직계와 방계 후손 및 출가한 딸까지 그 방에서 출산하기 위해 줄을 섰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 그 방에서 정승이 나왔는지 여부다. 따져 보니 석주와 우의정을 지낸 류후조(임청각 종가 25세 이의수의 외손자)가 그 방에서 태어났다. 나머지 한 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답사 전에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www.tcc-museum.go.kr) 방문을 권한다. 명색이 박물관이지만 딱히 전시품이랄 게 없다. 문화재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모든 콘텐트를 디지털 방식으로 재현해 놓아서다. 한데 그 실현 정도가 놀랍다. 전국 어디에서도 구경하지 못한 수준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입장과 함께 이름과 e-메일 주소 등을 등록하면 ID카드를 받는다. ID카드를 장판각 목판체험기에 갖다 대고 목판을 찍으면 자신이 찍은 문양이 e-메일로 자동 배달된다. 054-840-6510. 입장료 3000원.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왼쪽이 웅부공원이다. 옛 안동 동헌이 있던 자리다. 동헌 왼쪽에 800년 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부신목(府神木), 즉 관아를 지켜주는 신 나무다. 안동부사가 부임하면 이 나무에 먼저 신고를 했고 해마다 정월 열나흘 날 자정 나무 앞에서 제를 올렸다.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시장이 부사 역할을 담당한다.

안동댐이 들어서기 전 안동엔 은어가 떼를 지어 올라왔다. 남해안에서 안동까지 낙동강을 거슬러 올랐기에 안동 은어는 힘이 좋기로 이름이 났다. 하여 은어는 안동의 주요 진상품이었다. 하지만 한양까지 갖고 가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설치한 게 석빙고다. 안동 석빙고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석빙고다.

답사정보=사단법인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www.moongasa.org)’에서 안동 종가 투어와 고가 숙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안동에는 숙박 체험이 가능한 종가가 15개가 넘는다. 054-841-2433. 낙동강 은어를 안동식으로 조리한 음식을 먹으려면 ‘물고기 식당(054-859-2673)’을 추천한다. 은어를 고추장 양념에 조려 내놓는다. 1인분 1만원. 안동시내에 안동한우 골목과 안동찜닭 골목이 형성돼 있고, 월영교 입구에는 안동 간고등어와 헛제삿밥 식당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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