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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서울시의 창작공간 만들기

신당창작아케이드로 내려가는 입구는 온통 노랗다. 그 노란 하늘 아래 물고기가 나뭇잎을 먹고, 집가위가 빌딩과 키를 재는 예술의 세상이 열린다.
#16일 오후 서울 황학동 중앙시장(옛 성동시장)은 느닷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문을 연 지 60년(1946년 개장)이 넘어 이젠 점포의 절반 가까이가 비어버린 쇠퇴해 가는 재래시장. 이곳에 손님들이 몰린 까닭이 있었다. 시장 지하의 신당지하상가에 ‘신당창작아케이드’라는 예술 창작공간이 이날 개관했기 때문이다. 한때 서민들의 생필품을 공급했던 시장은 이제 지역 예술의 공급기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서울 독산동 333-7. 아파트 단지 사이에 이젠 쇠락한 기운이 역력한 저층 공장이 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있다. 허름한 공장 꼭대기에 대형 철골 로봇이 서 있고, 문이 열린 창고 주위 벽은 각종 사진들로 도배가 돼 있다. 그 옆에 ‘금천예술공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이 공장의 생산품은 ‘예술’이다.

365일 열려 있는 공장에선 그림을 본다. 재래시장 지하상가 횟집 옆 공방에선 도자기를 감상한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 서울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름하여 ‘서울시 창작공간 조성사업’. 신진 예술가에겐 작업실·스튜디오·아틀리에 등 창작공간을 내주고, 예술의 세례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생생한 문화를 향유토록 한다는 게 사업의 주 내용이다. 주민센터 통폐합으로 버려진 청사, 공장 이전지, 상권이 쇠락한 상가 등 도시가 발전하면서 낙후된 도심 공간이 주 무대다. 그래서 이들 예술 공장은 금천구·중구·영등포구·서대문구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시설이 뒤처진 지역에 들어선다. 이름만 들으면 낭만적인 요소를 제거한 관제 냄새가 물씬 나지만, 이렇게 갖춰진 하드웨어를 활용하고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건 민간의 몫이다.

웬만한 전시라도 볼라치면 멀리 가야 했던 지역 주민들은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모습도 보고, 전시회도 볼 수 있다. 입주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의 공동 창작도 가능하다. 올가을 문을 열기 시작한 창작공간들, 우리 동네엔 어떤 곳이 있는지 ‘week &’이 찾아봤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빈 공장, 빈 재래시장, 빈 주민센터 … 예술로 채우다

서울의 예술 창작공간 사업은 이제 발동됐다. 창작공간은 원래 쓰였던 건물이 공장이었으면 ‘아트 팩토리’로, 시장이었으면 ‘아트 아케이드’로 이름을 붙였다. 도시의 추물이 될 뻔했던 낡은 공장과 재래시장이 예술의 생산지로 거듭나고 있다. 슬리퍼 끌고 갈 수 있는 우리 동네 예술공장을 알아본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이곳은 원래 평범한 지하상가였다. 예술시장이 된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선 지금도 군데군데서 이불을 팔고, 분식을 팔고, 회를 판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 걸려 있는 범상치 않은 간판들.
신당창작아케이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입구, 중앙시장 지하 아케이드가 ‘예술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변신은 신당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부터 감지됐다. 그곳은 온통 노란색 천지다. 수십 개의 달과 별, 빽빽한 건물들이 노란 하늘 밑에 펼쳐졌다. 다 내려가면 알록달록한 세상이 열린다. 조명부터 연두·노랑·파랑·자주 등 알록달록하다. 한복집과 이불집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벽과 기둥에 낯선 그림들이 눈길을 끌고, 복도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공작품들도 보인다. 그러다 톡톡 튀는 개성이 느껴지는 간판들이 나타나고, 병 모양의 유리공예가 이어지는가 하면, 살짝 소름 끼치는 망치도 등장한다. 어렸을 적 TV를 주름잡던 인형극의 주인공들이 한 곳에 모인 공방이 나타났다. 조금 더 가니 도자기 굽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도 보인다.

이런저런 구경에 정신이 팔려 복도를 따라 내쳐 걷다 보니 횟집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그제야 내가 지하상가에 들어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1970년대 초반에 지어진 이 시장은 잘나가던 시절 100개 점포가 꽉 들어찼지만 최근 들어 52개 점포가 비어버렸다고 했다. 이 빈 점포들이 공예 중심의 소형 스튜디오 40실과 전시실·공동작업실 등으로 조성된 것이다.

이곳의 재미있는 점은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이불집 옆에서 공예작품이 만들어지고, 횟집 옆에서 도자기가 구워지는 모습을 다 볼 수 있다는 것. 각 스튜디오들이 기존 시장처럼 통유리로 다 들여다보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컴컴한 작업실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작업 모습을 상품처럼 팔고 있다. 행인들은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보고, 예술가들은 행인들의 행태를 관찰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다. 입주자들도 대부분이 생활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다.

시민체험 프로그램 도자기·북아트·금속공예 등을 만드는 각 공방들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주말엔 다양한 개관 프로그램을 한다. 전시장에선 ‘시장의 발견’ ‘시장, 예술을 만나다’ 전을 30일까지 연다. 서울 황학동 119번지 신당 지하상가, 운영사무실 02-2232-8833.

금천 아트 팩토리 대형 크레인이 걸린 창고에선 ‘안전 제일’이란 표지판이 눈길을 확 끌었다. 바닥엔 공구들이 널려 있고, 건물벽은 이동이 편한 간이식이다. 영락없는 공장이다. 하지만 색깔별로 치장된 벽과 공장 안의 예사롭지 않은 인테리어가 이곳이 단순한 공장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한다.

금천 아트팩토리는 원래 공장이었다. 사진과 그림만 없으면 아직도 그저 공장으로 보인다.
공장 안엔 이발소의 삼색등이 곳곳에 걸려 있고, 입구엔 절반은 멀쩡하지만 나머지 반은 건반 덮개가 부러져 속이 그대로 드러난 피아노가 놓여 있다. 낡은 청바지에 페인트가 묻은 셔츠를 입고 소매를 둘둘 걷은 파마 머리의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무실의 문을 여닫는다. 묘한 분위기의 이 공장에선 그림과 사진 등 예술품이 생산된다고 했다.

서울 독산동의 ‘금천예술공장(아트 팩토리)’은 인쇄공장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7일 문을 연 이곳은 사진·미디어·설치예술·공연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복합 레지던스형 스튜디오다. 심사를 거쳐 14개 팀, 40여 명의 예술가가 입주해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 및 부속 창고에 스튜디오 22개실, 호스텔 5개실과 공동작업실·공동연습실·전시관 등을 갖췄다.

이 예술공장은 지역 문화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첫째, 지역 주민들에겐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음 달 7일까지 지하 1층에선 ‘언더 마이 스킨’이란 전시가 열린다. 개관 기념 전시회다. 호주 작가 5명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는데 일반 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둘째, 지역 업체들과 협업을 한다. 이 공장 주변엔 가산디지털단지가 있다. 공장 천장에 서 있는 철골 로봇이 바로 이 의미를 담았다. 현재 입주 예술가들과 디지털단지 입주 업체들 간에 ‘아트로봇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예술산업 메카로서의 역할도 키워 나가겠다는 의미다.

주민 체험 프로그램 다음 달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도 할 예정이다. 일단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로봇 제작 강습을 계획하고 있다. 강습료는 무료, 기본 재료비만 준비하면 된다. 서울 독산동 333-7, 02-807-4800.

남산예술센터 옛 남산드라마센터는 6월 남산 예술센터로 재탄생했다. 서울시 창작공간 조성 사업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연극계에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예술센터가 대관 없는 공연장, 즉 제작극장으로서의 공공극장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중극장 규모이면서도 둥글게 감싼 계단식 원형 객석과 돌출형 무대가 결합된 독특한 모양의 극장은 실험적 연극 제작자들에겐 늘 기다리던 곳이었다.

남산 예술센터의 극장. 공연자들이 기다려 온 창작 중심의 무대다.
또 시민들을 상대로 문화예술 교육을 전문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 프로그램은 ‘아트 트리’와 ‘꿈꾸는 청춘 예술대학’이다.

아트 트리는 기존 청소년 동아리 지원사업을 업그레이드했다. 유명 예술가들이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 중점 학교를 선정해 직접 청소년들을 가르친다. 강동석·김대진·김덕수·김동규·남경주·조재현 등 유명 강사진이 마스터로 참여했다.

꿈꾸는 청춘 예술대학은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년 생활을 위해 추진 중인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이 연극·공공미술·뮤지컬·국악·영상자서전 만들기 등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다. 20여 개 자치구가 참여, 오는 11월까지 진행되며, 60세 이상 어르신들은 각 자치구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이곳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만큼 각종 공연의 관람료도 일반 극장에 비해 싸다. 다음 달 24~29일엔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드라마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장기하가 직접 연출한다. 재단장한 남산 예술센터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순환버스를 타고 남산을 한 바퀴 돈 뒤 남산 돈가스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은 주말 나들이 코스가 될 것 같다. 서울 예장동 8-19, 공연장 02-758-2109, 예술교육관 02-6008-7347.

옛 동사무소였던 작은 건물이 지역 예술을 지원하는 메카가 됐다. 사진은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전시실.
서교예술실험센터 9월 홍대앞이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서울 와우북페스티벌’이 열렸던 그 기간 동안 홍대 앞은 책 읽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페스티벌은 6월 개관한 ‘서교예술실험센터’가 주도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서교동과 동교동의 주민센터가 통합되면서 비어버린 서교주민센터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홍대 앞에 밀집한 문화기획활동을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2층엔 기획사와 인디 음반 제작업체 등이 입주해 있고, 지하엔 다목적 공간, 1층엔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센터는 국내 최초로 옥상 공방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시민들의 목공소 같은 곳이다. 옥상에 일반인들은 쉽게 사기 힘든 다양한 공구를 마련해놓아 누구라도 와서 목공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홍대 앞이 DIY 가구의 메카임을 염두에 둔 사업이다. 10일 열린 첫 워크숍에선 공구 사용법을 간단히 배운 뒤 필통과 의자 만들기를 했다. 앞으로도 매주 토요일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공방 프로젝트는 입주단체인 ‘문화로 놀이짱’이 기획, 진행하고 있다.

옥상은 공방뿐 아니라 극장으로도 활용된다. 15~18일 ‘달뜬 극장’전을 개최,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 등 4개 작품을 상영했다. 무료. 호응이 컸다. 그래서 앞으로도 다양한 독립영화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센터 입구엔 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민원서류를 뗄 수 있는 자동 발급기도 설치돼 있다. 서울 서교동 369-8, 070-7711-0246, http//cafe.naver.com/seoulartspace

세계는 아트 팩토리 열기 … 3년간 1500억원 번 곳도

‘아트 팩토리’는 21세기 세계 예술계의 특징적 현상 중 하나다. 어느 시대에나 예술가는 가난했고, 그들에겐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과거 이들에게 작업공간을 대준 건 예술을 후원하는 부자와 명망가들이었다. 하나 21세기엔 각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영국·프랑스·독일·중국·일본 등의 몇몇 도시는 앞다퉈 빈 공장과 광산과 낡은 건물에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을 꾸며줬다. 공간이 생기니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그들로 인해 이 낡은 공장지대와 낙후된 동네들은 저절로 예술도시가 됐다. 이들을 보려고 관광객이 모여들고, 지역 주민들에겐 일자리가 생겼다. 문화의 선순환을 이루는 아트 팩토리는 지금도 확산 중이다.

중국 ‘다산쯔 798’ 예술 특구 다산쯔는 원래 베이징 북동쪽에 있는 군수공장지대였다. 1990년대부터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며 공장지대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그중 798번지 일대의 일부 공장을 아주 싼 가격에 예술가들에게 임대했고, 2002년께엔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지금은 베이징시의 적극 지원 하에 중국의 전위예술문화를 이끌어 가는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요코하마 ‘뱅크아트 1929’ 요코하마에 있는, 1929년 세워진 옛 제일은행과 후지은행 건물이 은행 간 통폐합으로 비게 되자 2003년 시가 이를 사들여 예술단체들을 위한 작업공간으로 꾸몄다. 이듬해부터 입주자를 받은 이곳엔 지금 도쿄예술대 대학원 영상연구과가 입주해 있고, 50개 단체, 20여 명 이상의 예술가가 자리를 잡았다. 주변엔 카페와 레스토랑이 생겨났고 주말엔 관광객들로 붐빈다. 시는 2004~2006년 3년간 최소 120억 엔(약 1500억원)의 경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한다.

프랑스 파리 ‘르 생카트르(Le 104)’ 1873년 지어진 옛 시립 장례식장을 개조,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200명의 예술인이 벽을 허물고 창작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 건물이 있는 파리 19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실업률이 높고 개발이 뒤처진 곳이다. 시가 불균형 해소를 위해 설립한 것이다. 매달 한 번씩 입주 작가 한 명이 ‘수요일의 아틀리에’를 통해 지역 아이들을 만나는 등 지역민과 예술가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4곳 문 열었다, 내년까지 5곳 더 연다

서울엔 내년까지 모두 9곳의 창작공간이 문을 열게 된다. 지금까지 4곳이 문을 열었고, 올해 3개 더 열 예정이다. 내년엔 서울 홍은동과 녹번동에 아트 팩토리 건설이 예정돼 있다.

연희문학창작촌 서울시 최초의 문학 창작공간으로 연희동 옛 시사편찬위원회 자리다. 문학인의 개인공간인 집필 스튜디오와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지역 주민 및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시민·학생 대상 프로그램도 운영될 예정. 소설가 박범신씨가 운영위원이고, 수필가 신달자 교수, 소설가 은희경·권지예씨가 입주한다. 다음 달 5일 개관 예정.

문래동 예술공장 서울 문래동 공단 지역은 이미 자생적으로 예술공장이 형성돼 있는 곳이다. 이곳의 지속적 확장을 위해 서울시가 지원센터를 건립한다. 민간의 예술활동에 관이 개입한다는 반발도 있지만 개관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성북 아트 팩터리 서울 종암동 성북보건소를 예술가를 위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한다. 보건소의 특성을 살려 치료예술 전문의 아트 팩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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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