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누나” 하던 청년이 “계산은 아줌마가 …”

‘중국인 거리’ 등 단편소설의 전범(典範)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30대 초반에 발표, 일찌감치 ‘문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오정희(62·사진)씨가 아담한 소설집 『가을 여자』(랜덤하우스)를 펴냈다. 작가는 200자 원고지 15쪽 안팎의 그야말로 콩트 분량의 짧은 소설 25편에 맵고 짜고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인생의 단면들을 생생하게 담았다.

언제부턴가 오씨는 완고한 가부장제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갇혀 신음하는 여성 주인공을 즐겨 다뤄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런 취향은 두드러진다. 주인공들은 대개 결혼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삶에는 이별을 고하고, 육아와 살림이라는 책임을 천형처럼 떠맡은 이들이다. 그들은 부엌에서 김치를 버무리거나(‘어떤 자원봉사’), 아기 목욕을 준비하다(‘멋 또는 존재증명’) 사건을 맞닥뜨린다. 남편의 겨울 양복을 세탁 맡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려 험한 욕을 먹은 후 “주부가 기억해야 할 일은 2000가지가 넘는다”며 혼자 울화통을 터뜨리지만 그렇다고 가정 밖으로 탈출을 감행할 엄두도 못내는 ‘짠한’ 치들이다.(‘건망증’).

때문에 소설집은 비슷한 헛헛함에 시달리는 30∼40대 여성들에게 특히 ‘내 일’로 읽힐 것 같다. 무엇보다 막판 반전이 절묘하다. ‘첫눈 오던 날’의 주인공 ‘나’는 34살 먹은 도서관 사서다. 결혼할 의욕도, 만날 남자도 없는 나는 토요일 오후 영화관과 음악회를 전전하다 레스토랑을 찾는다. 혼자 맥주잔을 기울이는 나에게 누나같은 타이프가 좋다며 한 청년이 접근한다. 낮술이 밤술로 이어져 정신 없는 사이 청년은 사라지고 없다. 청년의 친구들이 마신 엄청난 술값도 내 앞으로 떠넘긴 채. 술값보다 쓰린 게 청년이 남긴 멘트다. 계산은 아주머니께서 하실거라는. 누나와 아주머니의 낙차가 나를 무너뜨린다.

신준봉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