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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읽기] ‘열광과 냉소 사이’ 박정희를 다시 본다

1968년 9월15일 ‘한·호 정상회담’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큰딸 근혜. 박근혜 의원은 당시 16세의 나이로 부모와 일정을 함께 했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은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의 특별기를 빌려 타야 했다. [중앙포토]
박정희 한국의 탄생
조우석 지음, 살림
422쪽, 1만6000원


‘대중의 열광과 지식인의 냉소’.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내려진 ‘저주’를 책은 이렇게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 열광은 식고 냉소는 더 차가워진다. ‘저주’에서 벗어날 방도는 기껏해야 ‘무관심’일 게다. 그렇게 한 세대가 이뤄낸 역사는 터무니 없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26일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내년은 한국전쟁 발발 60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6·25전쟁(1950)과 박정희의 5·16쿠데타(1961)는 차라리 소설이라 할 만큼 치밀한 인과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박정희의 18년 집권과 암살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근대 한국’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저자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가 ‘한반도 모더니즘 혁명’을 이뤄냈다고 결론 짓는다.

책 제목이 ‘박정희=한국의 탄생’으로 읽힐 만큼 도발적이다. 논란을 각오하며 ‘칠 테면 쳐봐라’는 식의 ‘인파이터’ 기질로 글을 썼다. 저자는 30년 가까운 신문사 생활을 주로 문화부 기자로 지낸 베테랑 언론인이자 문화평론가.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박정희에 얽힌 시대적 담론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기발하게 넘나든다.

“‘쿠데타는 헌정사의 훼손’이란 식의 평면적인 정치학 교과서 논리에 집착하면 박정희란 위인은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보다 함석헌·장준하 등 재야 인사에 후한 점수를 주는 건) 관전평을 쓰는 아마추어 바둑 해설가를 프로기사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태도”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평한다. 책의 여러 곳에서 박정희에 대한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박정희=친일파=파시스트’라는 식으로 단선화된 얄팍한 도식의 반(反) 박정희 논리가 30년 넘게 유지되면서 한국 지식사회의 사막화를 재촉했다는 비판이다.

역사는 복합적이다. 특히 태동기의 대한민국을 짊어져야 했던 1960, 70년대의 사람들은 원치도 않게 식민지 교육을 받아야 했고, 전쟁과 가난을 겪어야 했다.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면 마치 독재를 미화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며 결국 식민지 시대를 긍정하는 것처럼 과잉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일제가 남긴 게 대단한 게 아니다. 책이 인용하는 예를 보자. 일제 36년 동안 배출된 이공계 대학생은 통틀어 400명에 불과했다. 박사 학위자는 고작 6명. 반면 일본은 1940년에 이공계 졸업자가 6만 명이었다. 이 ‘맨 땅’에서 박정희는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공고를 세우고 기능 올림픽을 독려하며 ‘산업 역군’을 길러낸 것이다. 2004년 이공계 대학생 수는 우리가 일본보다 27만 명이 많다고 한다.

논쟁적 담론과 별개로 저자 특유의 탄력 있는 문장이 재현해 낸 박정희의 인간적 면모와 일화들도 생생하다. ‘울보’ 박정희, ‘술꾼’ 박정희, ‘시인’ 박정희의 면모가 그 시대적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혁명’을 결의하며 쓴 비장한 시가 1964년 트로트 가요로 나왔다가 그 스스로에 의해 ‘금지곡’ 처분이 내려진 사연도 흥미롭다.

대중적으로 쉽게 읽히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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