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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협박 맞서 단식·순국 이중언 선생 기백 살아났다

이중언 선생의 어록비. [독립기념관 제공]
일제의 협박과 회유에 맞서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독립지사의 기백이 100년 만에 어록비로 다시 살아났다.

독립기념관은 15일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 안 시어록비공원에서 순절(殉節)지사 이중언(李中彦·1850∼1910) 선생의 어록비(1.5mx4.9m)를 제막했다. 독립기념관은 개관 이후 심의를 거쳐 독립운동가 등의 어록비를 경내에 세우고 있으며, 이번이 97번째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죽음을 각오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 다섯 역적의 목을 베소서)’를 올리고 통곡하며 돌아온 뒤 세상과 발을 끊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왜적 치하에서는 살려고 음식 먹는 일은 결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9월 8일 단식을 결심했다. 그는 이튿날 일제에게 보내는 서릿발 같은 경고문을 썼다. 어록비에는 ‘한치 흔들림없이 빼앗긴 내 나라 위해 오직 이 한 목숨 던지노라’는 이 경고문이 새겨졌다.

선생은 단식 27일 만인 10월 4일 ‘술회사(述懷詞)’를 읊으며 빼앗긴 나라를 탄식한 뒤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안동 하계마을에서 퇴계 이황의 11대 손으로 태어난 선생은 본래 대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 등 여러 관직을 지내다 1890년 낙향했다.

2006년 『순절지사 이중언』이란 평전을 발간한 안동대 김희곤 교수는 “자결 순국은 나라 잃은 선비들이 선택했던 가장 강렬한 저항”이라며 “신친일파와 일제 부활을 막기 위해 선생과 같은 민족 지성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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