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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로 데뷔 10년, 마침내 프리마돈나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62)는 바로크 시대 음악의 거장이다. 1980년대부터 바흐의 음악만 60장 넘게 녹음하면서 바로크 음악의 유행을 선도했다.

소프라노 임선혜(33)씨는 10년 전 그의 이름을 전혀 몰랐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직후였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을 통해 헤레베레의 이름을 처음 들은 때가 1999년 12월이다. 헤레베헤와 함께 공연하기로 했던 소프라노 한 명이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것.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가 연주되기 하루 전, 임씨는 ‘대타’로 섭외됐다.

“전혀 몰랐던 작품이었는데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 ‘깜짝 데뷔’ 10년이 된 임씨의 고백이다. “유학 1년 만에 찾아온 첫 기회여서 잡고 싶었다”는 것이다. 헤레베헤라는 큰 인물과의 데뷔 무대도 스물셋 소프라노에게는 신나는 경험일 뿐이었다.

하지만 헤레베헤는 좀 더 의미를 부여했다. 공연 후 “이 젊은 소프라노는 환상적이다”라는 말로 임씨를 유럽 음악계의 신데렐라로 끌어올렸다. 헤레베헤가 다음 공연에 출연 예정이던 소프라노를 바꿔가면서 임씨와 함께 공연한 것도 화제가 됐다. 베를린 현지 신문은 “우리는 임선혜를 더 자주 보길 원한다”는 말로 공연평을 마무리했다. 이후 윌리엄 크리스티, 르네 야콥스 등 이름난 지휘자는 물론 무용가 피나 바우쉬와 한 무대에 선 것도 성공적인 ‘대타 데뷔’ 덕이었다.

“그때그때 다가오는 기회를 즐긴다”는 것이 데뷔 후 임씨가 익힌 지혜다. 지금은 유럽에서 바로크 음악 공연의 프리마돈나로 떠올랐지만 최근까지도 1년에 한두번씩은 ‘대타’로 무대에 섰을 정도다. 하루 이틀 전의 섭외도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임씨는 지난달 말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한 ‘사랑의 묘약’에서 낭만 시대 음악에도 잘 맞는 음색과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10년간 가능한 모든 도전은 해봤다. 이제 천천히 곱씹으며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16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과 17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각각 헨델과 바흐의 작품을 노래한다. 유럽에서 바로크 소프라노로 활약했지만 바로크 작품을 한국에서 부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제대로 바로크를 공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왔다”는 것이 10년 만의 ‘지각 연주’에 대한 변명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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