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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백신접종 우선순위 합리적으로 정해야

빠르게 번져 나가던 신종 플루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4주 동안 발열과 기침 환자 900여 명을 조사했더니 신종 플루는 10%뿐이며, 나머지는 일반감기(70%), 코감기(15%), 목감기(5%)였다. 입원환자도 줄어들어 서울대병원 신종 플루 병동의 침대 10개 가운데 9개는 한 달 내내 비어 있다.

이렇게 유행이 수그러들면서 이 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도 차분해졌다. 학교는 열나는 학생이 있어도 휴업을 자제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취소했던 행사를 다시 개최하고 있다. 지하철에도 마스크를 쓴 얼굴이 훨씬 줄었고, 신종 플루 뉴스도 뜸하다. 신종 플루 공포증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공포증의 자극 요인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증은 개체보존을 위한 본능적 반응이다. 동물은 어렴풋하게 적이 나타나면 겁을 집어먹고 즉시 회피한다. 그게 고양인지 호랑인지 파악하느라 어물거리다간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동물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통제 영역의 고차원 뇌는 마비되고, 대신에 회피 영역의 뇌가 반사적으로 행동을 지배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특히 신종 플루처럼 새로 출현한 전염병은 회피영역의 뇌를 매우 강하게 자극한다. 전염병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어 두려운 존재이나, 그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매우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지난해 광우병 사태도 알고 보면 회피영역의 뇌가 강하게 자극을 받은 결과 반사적으로 회피 본능이 작동한 데서 비롯됐다.

언론의 특성도 회피 영역의 뇌를 자극하기 십상이다. 신종 플루의 치사율은 0.1%로 낮지만, 드문 사건이다 보니 뉴스가치를 높게 매긴다. 그래서 언론은 사망환자가 발생하면 중계방송을 하듯 한 사람 한 사람을 크게 다루지만, 회복된 99.9%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더구나 신문과 방송에서 본 사망 환자의 스토리와 영상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언론이 주는 이런 착시현상은 신종 플루가 매우 위험한 전염병이라는 오해를 일으킨다.

신종 플루라는 병명도 두려움을 자아낸다. ‘신종’이란 말은 아직 모르는 대상이며, 왠지 불안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병의 정체는 90년 전부터 사람과 돼지에게 인플루엔자를 일으킨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특히 이번에 나온 백신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우리 몸은 예전에 신종 플루와 비슷한 인플루엔자와 싸운 경험으로 면역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면역력은 신종 플루가 침투하면 즉시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

원래 인플루엔자란 이탈리아 말이며, 영향(influence)이란 뜻이다. 500여 년 전 이탈리아에 새로운 돌림병이 나타났는데, 그 당시 과학자들은 별자리가 바뀌어 하늘로부터 내려온 기운이 지구에 영향을 끼친 것이 이 병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런 내력을 우리말로 옮기면 감기(感氣)가 된다. 애초부터 신종 플루 대신 ‘북미 독감’이라고 불렀더라면 공포증이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신종 플루와의 싸움은 이제 후반전에 들어섰다. 남은 싸움의 성패는 백신이 결정할 것이다. 현재 확보된 백신은 전체 국민의 3분의 1을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므로 우선순위가 높은 사람부터 먼저 백신을 맞게 될 것이다. 이때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들의 회피 본능이 작동해 너도나도 내가 먼저라고 나서면 우리 사회는 다시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신종 플루 공포증을 잠재우기 위해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지불했다. 백신 우선순위를 둘러싼 혼란을 막으려면 방역 당국은 백신에 대해 널리 알리고 국민과 언론의 협조를 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생략한 채 백신접종을 시작했다가 겨우 잠잠해진 신종 플루 공포증이 다시 살아날까 두렵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감염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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