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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뒷모습에서 몰랐던 나를 발견하다

작가 함정임(45·사진)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항상 길 위에 서 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어딘가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그들의 마음 풍경은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방랑자의 운명에 순응하는 얼굴이다. 함씨는 2007년 펴낸 수필집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에서 “나는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변화를 꾀하는 노마드(유목민)적 인간”이라고 썼다. 함씨가 3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집 『곡두』(열림원)에도 방랑을 업으로 삼는 작가의 분신들이 나온다. 2006년부터 부산 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정착한 그를 e-메일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함정임씨는 바다와 영화의 도시 부산에 흠뻑 취해있었다.

“제게 여행은 삶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해운대 동쪽 집에서 서쪽에 있는 학교로 출퇴근 하는 부산 생활도 하루하루가 여행이죠. 요즘엔 부산국제영화제 속에 풍덩 빠져있어요.”

함씨는 자신을 ‘낯선 세상에 호기심이 많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생애 첫 작품인 1990년작 ‘광장으로 가는 길’부터 길 떠나는 인간에 주목해왔다. 표제작 ‘곡두’ 역시 이복 오빠를 찾아 떠나는 여동생 이야기다. 또 다른 수록작 ‘자두’ ‘상쾌한 밤’과 연작을 이룬다. 곡두는 환영(幻影)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오빠를 상징한다.

“오빠는 유산으로 빚만 물려받고 아내의 경제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엎드린 남자’입니다. 중추 세대로 입지를 굳혀나갈 나이에 방랑중이거나 도피중인 중년 남성의 우울한 초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함씨는 떠도는 인물들의 최종 목적지보다 노정 그 자체에 주목했다. 그러니 가족의 상봉 여부나 잃었던 경제력 회복은 중요치 않다. 길을 걷는 뒷모습에서 몰랐던 나를 발견할 뿐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함씨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구름 한 점-환대2’다. ‘환대’와 연작을 이루는 이 소설은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주인공 안서가 노인요양원에서 자신을 딸로 착각하는 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인간답게 죽는 문제(well-dying)를 부산 달맞이언덕의 아름다운 풍광에 기대 풀어냈다. 함씨는 “요양원과 병원을 전전하는 노인들 모습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인간의 실존과 죽음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함씨의 인물들은 여전히 아일랜드(‘행인’)로, 저 멀리 아프리카(‘킬리만자로의 눈’)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떠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한층 더 고무시킨다”고 했다. 일상화된 떠남 속에서 건져 올린 문제적 삶의 현장, 그것이 함씨가 말하는 소설집 『곡두』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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