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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의 비극 앞에, 우린 파트라슈와 함께 울었지”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 ‘십자가에서 내리다’(1612~14),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작, 패널에 유채, 421 * 311 cm (중앙패널), 성모대성당, 안트베르펜
텅 빈 싸늘한 성당, 죽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엄한 그림(사진 1) 아래 한 소년이 쓰러져 있다. 순하게 생긴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들어와 두리번거리다가 소년을 발견하고 다가가 소년을 깨운다. 몸을 일으킨 소년은 개를 끌어안고 속삭인다.
“날 찾아냈구나, 파트라슈. 앞으로는 우리 언제나 같이 있을 거야, 그렇지? 나, 그 그림들을 봤어. 이제 소원을 이룬 거야. 지금 정말 행복해. 그런데 좀 피곤해, 졸리고… 너도 그렇지….”

만화영화 ‘플랜더스의 개’의 이 마지막 장면(사진 2)을 보고 어렸을 때 얼마나 엉엉 울었던지. 그뿐 아니라 길에서 커다란 개만 보면 “파트라슈다!”라고 외치곤 했고, 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에 대해 처음 배울 때도 ‘아아,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그림을 그린 그 화가’하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마 나 말고도 한국 사람 치고 ‘플랜더스의 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플랜더스 사람들은 ‘플랜더스의 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플랜더스의 개’ 원작이 플랜더스 지방이 속한 벨기에 사람이 쓴 게 아니라 영국의 여성 소설가 위다(1839~1908)가 영어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랜더스의 개’에 대해 세계에서 제일 강한 애정을 보이는 사람들은 영국인도 아닌 일본인이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신문 기자인 다카쿠라 마사키가 2006년에 쓴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초 위다가 사망했을 때 한 일본 외교관이 그녀에 대한 기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위다의 대표작 ‘플랜더스의 개’를 일본에 번역해 소개했고, 그것이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70년대 중반 바로 이 TV 애니메이션 ‘프란다스노 이누(플랜더스의 개)’가 만들어져 방영되면서 네로와 파트라슈는 일본인의 뇌리에, 그리고 한국인의 뇌리에도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2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의 한 장면
다카쿠라의 기사에는, 벨기에인으로서 드물게 ‘플랜더스의 개’를 연구하고 있는 얀 코르텔의 재미있는 사연도 실려 있었다. 그는 바로 네로와 파트라슈가 숨진 성모대성당이 자리 잡은 안트베르펜 출신이지만, 그 역시 80년대 초에 웬 일본 관광객 소년이 찾아와 다짜고짜 ‘플랜더스의 개 아세요”라고 묻기 전까지는 그런 소설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르텔은 도서관에 가서 ‘플랜더스의 개’ 영어 원서를 찾아 읽고(왜냐하면 벨기에에서 주로 쓰는 네덜란드어나 프랑스어로 번역된 책이 아예 없어서), 그 뒤로 열심히 ‘플랜더스의 개’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작가가 네로와 파트라슈가 살던 곳으로 설정한 마을이 안트베르펜에서 5㎞쯤 떨어진 호보켄이라는 것도 밝혀냈다고 한다.

벨기에의 한 지방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정작 벨기에에서는 외면을 받고 머나먼 일본과 한국에서 훨씬 사랑받는다는 게 아이로니컬한 일이기는 하다. 삐딱하게 보자면, 유럽 문화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일본인의 성향과 그걸 따라하는 한국인의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의 ‘플랜더스의 개’ TV 애니메이션의 완성도가 높았고 또 동양인의 감수성에 맞는 면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 일본 애니메이션이 원작 소설보다 더 호소력 있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주인공 네로(Nello)도 넬로라고 발음해야 하고, 아로아(Alois)도 알로이즈나 알루아(프랑스식)로 발음해야 맞겠지만 그냥 추억의 만화에 나온 대로 네로와 아로아라고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사실 내가 어렸을 때 이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한없이 선량한 소년과 충견이 그렇게 무력하게 서글픈 죽음을 맞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비극은 다 싫어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굉장히 좋아했는데, 왜 ‘플랜더스의 개’는 그렇게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3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십자가를 올리다’(1610). 네로는 죽기 전에 이 그림과 ‘십자가에서 내리다’ 삼면화를 보게 된다(사진 Alison,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에 따라 사용).
곰곰 생각해 보니, ‘성냥팔이 소녀’는 하룻밤 동안의 짧고 강렬한 비극이고, 성냥불 속에 나타나는 환영이 절망적으로 화려한 색채를 띠고 있어서 그것이 매혹적이었다. 반면에 ‘플랜더스의 개’는 주인공들이 슬픈 종말을 향해 천천히 내리막길을, 그것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남루한 내리막길을 걸어간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네로는 아로아네 집 풍차에 불지른 범인으로 몰려서 오두막집에서도 내쫓기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림 콘테스트에 재능과 열정을 쏟았는데도 낙방하고…. 환상이 개입되지 않은 이 쓰디쓴 현실적 비극을 어린아이로서 용납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야기 마지막에서, 네로가 늘 보고 싶어했던, 그러나 커튼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루벤스의 그림을, 죽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보는 장면은 어린 나이에도 뭔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사진 2) 아마 그때 처음으로 예술이 주는 숭고한 감정이라는 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네로가 본 루벤스의 그림들은 그의 특징대로 장려하고 역동적이고 격정적이며, 인물들의 육체의 양감과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십자가를 올리다’(사진 3)에서 보면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줄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의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이전 성화들이 가라앉아 있고 침착하고 영적인 데 반해 루벤스의 그림은 성화인데도 관능적이고 강렬하다. 그래서 이런 루벤스의 그림들은 ‘플랜더스의 개’의 조용하고 서글픈 분위기와 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루벤스는 네로와는 아주 상반된 삶을 살았다. 유럽 왕족들의 경탄 속에서 거대한 화폭에 붓을 휘두르고 자잘한 마무리는 수많은 제자에게 맡겼던 루벤스는 아마 서양미술사상 가장 유쾌하고 화려한 인생을 산 화가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루벤스가 그저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는 형식적인 그림이나 대량생산하는 화가는 아니었다. 그는 선대 거장들의 다양한 화풍을 열심히 연구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으며 그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와 생의 기쁨을 붓에 실어 화려하고 약동하는 듯한 대작들을 그려냈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도 바로크 미술의 대가로서 명예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루벤스의 삶은 가난 속에서 예술혼을 제대로 떨쳐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 네로와는 철저하게 대조적이다. 하긴 이런 기묘한 대조가 오히려 이 이야기의 비극성을 강화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문소영 symoon@joongang.co.kr

중앙데일리 경제산업팀 기자. 일상 속에서 명화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며,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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