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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등 그리스 고전, 최소한 50종은 더 번역돼야"

천병희 교수는 고전을 이렇게 정의한다. “동서양 고전은 앞으로 우리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양서다.” 최정동 기자
-고전 번역이 필요한 이유는.
“다른 문명을 흡수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다. 미국의 경우를 봐도 전통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외래 문명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성장할 수 있다.”

-그리스 고전 번역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대학 1~2학년 때 그리스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다른 이가 그리스 고전을 번역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로 유학 간 후 본격적으로 그리스 고전을 공부했다.”

-번역이 제일 힘들었던 책은.
“다 힘들었다. 지금 작업 중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정말 너무 힘들다. 우스갯소리가 많이 나오는데 무슨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 고전이 그리스어가 아니라 아랍어 텍스트에서 중역된 이유는.
“논리학 분야는 가톨릭 교회에서 수용해 사용했으나 철학·자연과학 등 나머지 분야는 교회에서 사용하지 않아 방치됐다. 15세기까지 스페인을 지배했던 아랍인들을 통해 차츰 그리스 저작들이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로 된 텍스트가 있었으나 보급이 안 됐고 교회에서 라틴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는 학자가 많지 않았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학자들이 대거 로마로 이동했고 그때부터 그리스어 텍스트의 연구·번역·출판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그리스 원전은 믿을 만한가.
“필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실수가 발생했다. 새로 필사하는 사람이 넘겨짚고 전에 필사한 사람의 ‘잘못’을 임의로 교정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여러 필사본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고전 번역의 과제는.
“앞으로 최소한 50종 이상 번역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리스 고전은 안 팔리기 때문에 정부와 사회의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작업이 시작됐지만 플라톤 전집도 아직 안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몇 권 안 나왔다.”

-그리스 고전을 번역 작업을 수행할 학자층이 형성돼 있는지.
“많이 있다. 그리스·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로 2000년에 창립된 정암학당이 있다. 플라톤 전집을 기획해 번역 중이다. 신진 학자들이 모여 활발하게 강의도 하고 강독도 하고 있다. 국가 지원 없이 자비로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그리스 고전 번역을 책임질 사람들이다. 철학·문학·역사·과학 분야를 모두 다루려면 20~30명의 학자군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

-우리말 번역본이 없는 경우 불가피하게 영문 번역본을 읽는다면.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러브 고전 문고(Loeb Classical Library)’라는 유명한 시리즈가 있다. 새로운 번역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젊은 신진 학자들이 내용을 보완하고 주석을 새로 정리하고 있다. 번역 문체에도 일종의 유행이 있다. 현학적인 직역체를 탈피한 알기 쉬운 번역서가 많이 나왔다. 쉽게 읽히도록 주석을 아예 없앤다는 방침을 정하기도 했다. 최근 추세는 원전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원전에 충실한 번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직역과 의역의 오랜 논란에서 어떤 입장인지.
“의역에 반대하지 않지만 나는 전에는 직역 쪽을 택했다. 이번 작업에는 의역을 좀 하고 있다. 원전의 표현과 거의 일치하는 우리말 표현이 있으면 사용하는 게 좋다. 독자들이 읽기에 편하고 기억에 남는다.”

-유럽과 미국에서 고전의 사회적 위상은 어떤가.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전에 대한 열의가 식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달랐다. 유럽이 고전을 등한히 하는 사이 유럽의 고전학자들을 불러들여 엄청난 작업을 추진했다. 독일·영국·프랑스 등지의 학자들을 초빙했다. 미국 대학들은 몇 년에 한 권 정도 좋은 책을 내면 된다는 식으로 워낙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유럽 대학들이 재정이 탄탄한 미국 대학들과 경쟁을 할 수 없었다.”

-호메로스가 과연 실존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영원히 풀리지 않을 문제다. 오디세이아와 일리아드, 이 두 작품은 가치관이 다르고 언어 표현도 다르다. 일리아드에는 영웅시대 영웅들의 생활방식이나 상무정신이 나타나 있는 반면 오디세우스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같은 작가라 해도 자신의 작품에 각기 다른 가치관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그리스 고전을 통해 배워야 할 고대 그리스의 정신이 있다면.
“독자마다 중시하는 게 다르겠지만 도편추방 제도에 나타난 ‘독재자는 용납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아테네는 독재자의 탄생 가능성에 대해 민감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테미스토클레스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존재였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추방했다. 지금도 도편추방에 사용됐던 도자기 조각이 발견된다. 그리스인들은 같은 시민끼리 가차 없이 서로 비판하는 전통이 있었다. 공직자 선출도 투표나 추첨을 통했는데 되도록 많은 사람이 공직을 맡을 기회를 주기 위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도 공직자 임명 방법에 대해 아주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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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