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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국학의 시대, 우리 고전의 힘을 흡수해야"

도올은 국학이 21세기 학문의 중심이 될 것이며 서양 학문은 오히려 종속적 위치에 놓인다고 주장한다. [중앙포토]
-1982년 귀국 직후부터 번역에 대해 일관적인 주장을 펴왔다.
“번역은 가장 우대받아야 할 학문 분야다. 학자의 학문 업적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것도 번역 성과다. 번역 업적은 학술 평가에서 제일로 쳐야 한다. 옥스퍼드대·하버드대·예일대에서는 주석과 학술성의 해제가 포함된 고전 번역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해방 이후 논문 저술은 서양식 학문이고 번역은 ‘일본인들이나 하는 짓’으로 취급받았다. 일본의 번역 수준은 세계 제일이다. 번역 능력을 바탕으로 높은 문명 수준에 도달했다. 아직은 한국이 쉽게 다다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미국·영국·일본이 번역 업적을 높이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문의 엄밀성이다. 논문은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작성이 가능하나 번역은 원전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간·노동력·방법론에 있어서 엄청난 투입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이 고전과 고전 번역을 중시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번역을 매개로 그리스어·라틴어를 교육했다. 그 결과 영어에는 고전의 막대한 에너지가 용해돼 있다. 우리말은 그렇지 못하다. 한문 고전의 성과가 우리말에 용해되는 게 국가경쟁력의 기반이다. 인간은 언어를 습득해 의사를 소통할 뿐만 아니라 문화를 전승하는 힘 있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우리 조상보다 못하다. 퇴계나 다산이 한문을 쓴 만큼 영어를 쓰지 못한다. 번역 능력과 외국어 능력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야 각 분야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번역 수준이 높은 일본이 정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일본 문명 자체가 아니라 일본의 정치적 후진성이 문제다. 일본의 정치는 내면적 반성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천황제와 자민당 독재가 전후에 유지됐다. 진정한 자기 반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일본은 실제적으로 언론 자유가 없는 나라다. 도쿄대 교수들은 우익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경직성 때문에 일본은 디지털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 전체 수준으로 본다면 일본의 저력은 우리의 10배가 넘을 것이다. 일본은 언제건 엄청난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다. 우리가 일본의 성과를 배운다면 비약적으로 치솟을 수 있다.”

-그러한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는가.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고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분단현실이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어려운 현실을 걱정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본질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겐 또 우리에겐 인문학적 갈망이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인문학으로 가려던 이들까지 주저하게 된다.”

-고전 번역의 효용은 무엇인가.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은 드라마 한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드라마 작가들이 복잡한 한문의 세계를 우회해 조선 시대의 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 고전이 담고 있는 사상 체계는 21세기 어떤 사상체계보다도 깊이가 있다. 우리는 서양 고전과 문명에 일부 내재돼 있는 저열한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우리 고전의 위대성을 외면했다. 동양 고전은 도덕과 자기 절제를 가르친다. 민주사회에서 협동하는, 멋있는 인간을 키울 수 있는 내용이 동양 고전 속에 있다. 번역을 통해 교육에 철저히 반영돼야 할 것들이다.”

-우리 고전에서 영감을 얻어 ‘대박’을 터트리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읽지 말라고 해도 고전을 읽을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겠지만, 고전은 일차적으로 실용성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실존의 정체를 알기 위해 존재한다. 고전을 단지 현실 속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중국 문명이나 동아시아 문명이 물질적·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더라도 인문학적 가치를 발현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붕괴한다. 이런 문제는 어쩌면 일반인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인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은 고전의 세계와 오늘의 현실을 넘나들며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은 영어·라틴어·한문 등에서 완벽한 도사가 돼야 한다. 미국·영국·일본에 엄청난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사회 분위기에서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야 민족의 미래가 있다.”

-국가는 번역사업의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4대 강 사업에 투입하는 돈의 1%, 0.1%만 사용해도 4대 강 사업 효과의 억만 배를 낼 수 있다. 인문학의 부흥이라는 것도 사실은 애매하다. 돈 낭비가 있을 수 있다. 구체성이 없다. 그러나 국가적 번역 사업은 검증이 가능하다. 효과와 성과가 확실하다. 정부가 번역 사업에는 안심하고 돈을 퍼부어도 된다. 국가적 번역 사업을 관장할 주무부서도 필요하다. 번역청 설립을 고려할 만하다. 일본이나 중국, 서구 각국은 고전 전통이 있다. 일본은 출판사 중심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처럼 국가기관화된 경우가 없다. 훌륭한 한국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번역청이 국가 번역사업을 효과적으로 세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주장이 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까.
“국가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돌아가야 ‘보이는 것’도 돌아간다. 동아시아 문명의 태동을 맞이하는 지금, 이에 대처하기 위해선 무형의 문제들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정부와 국민이 의식해야 한다. 번역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당위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번역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도 평생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까.
“그렇다. 반드시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주자학 전통 때문에 국학에 대한 의식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고전번역원은 국학의 기초 문헌을 만들고 있다. 승정원일기 등이 번역되고 있다 엄청난 작업이다. 우리나라 21세기는 국학의 시대다. 국학이 정통 분야로 대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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