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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세종대왕

“전하,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 아뢰옵니다. 찌아찌아 족이란 남만 종족이 있는데 말은 있으나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라 하옵니다. 이런 전차로(까닭에) 전하께옵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을 빌려 그네들의 말을 표기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옵니다.”

“허허 그것 참 장한 일이로고. 나랏말쌈이 인도네시아와 달라 서로 사맛디(맞지) 아니하여 제 뜻을 펴지 못하던 어린 백성들이 비로소 문자를 가지게 되었단 말이 아닌가. 집현전 학사들을 서둘러 파견해 그네들이 훈민정음을 익히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라.”

세종대왕께서 환생하시더라도 깜짝 놀랄 일임에 틀림없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애민정신이 이름조차 생소한 찌아찌아 족에게서 구현되고 있으니 말이다. 후발주자 한국이 정보기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친(親)디지털 문자로서의 과학성에 있었는지 모른다.

훈민정음이야말로 불멸의 업적이지만 그것만으로 세종을 기리는 건 다리만 더듬어보고 코끼리를 절구공이처럼 생겼다고 믿는 맹인모상(盲人摸象) 격이다. 대왕의 업적은 국방, 외교에서 당시의 국가 기반산업인 농업과 과학기술, 문화예술에까지 이르렀으니 실로 전인(全人)이라 할 만하다.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니 과학 분야만 보자. 즉위 초 10년 동안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대왕은 과학에서 대책을 찾았다. 그리하여 관노 신분이던 장영실을 발탁해 측우기와 천체관측기 혼천의를 만들게 했다. 측우기는 서양의 것보다 200년 앞섰다. 장영실 이외에도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든 이천 등 세종조에는 뛰어난 과학자가 즐비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최근 명예의 전당에 헌정할 올해의 과학자로 세종을 선정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563돌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대왕이 광화문에 납셨다. 그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용안을 하시라도 우러러 뵐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지갑 속에 용안을 모셔 둘 때의 뿌듯함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제아무리 씀씀이를 줄여도 세종대왕이 금세 퇴계 선생으로 바뀌고 어느새 다보탑 동전 몇 닢으로 둔갑해 버릴 염려 없이, 늘 한자리에서 한결같은 미소로 계실 테니 말이다. 때마침 노벨상의 계절이다. 늘 이맘때면 바다 건너 들려오는 수상 소감을 들으며 주눅이 들곤 한다. 이제 조선 과학의 르네상스를 일군 세종의 동상을 광화문에 모셨으니 내년 이맘때면 대왕의 음덕으로 낭보가 날아왔으면 좋겠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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