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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좋은 직장의 조건

“우리 회사는 절약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몇 푼 아끼자고 개고생(dog-tired)하지는 마세요.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비용을 쓰면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컴퓨터 관련업체 넷앱(NetApp)의 출장지침이다. 데이터 저장·관리 솔루션업체인 이 회사는 주고객이 기업·대학 등 법인이어서 일반인에겐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시가총액이 90억 달러에 달하는 정보기술(IT) 분야의 꽤 큰 회사다. 복리후생도 남다르다. 아이를 입양하면 1만1390달러를 지원해준다. 자폐아를 둔 직원은 회사가 따로 챙긴다. 2006년 이후 43명의 직원이 총 24만 달러의 도움을 받았다.



넷앱은 올 초 미국 경제잡지 포춘이 뽑은 ‘2009년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순위에서 과거 2년간 ‘꿈의 직장’으로 군림하던 구글을 제치고 1위로 뛰어올랐다. 전년 14위에서 초고속으로 순위가 오른 데엔 이 회사의 평등주의적(egalitarian) 기업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경영진과 일반 직원 간의 거리감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 회사 톰 멘도자 부회장은 “좋은 기업은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는 것은 연봉이나 직급에 대한 불만보다 회사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며 “넷앱은 직원들이 사내에서 존중받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힘쓴다”고 말했다. 그 후 넷앱 역시 경제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500여 명을 감원하는 바람에 ‘좋은 직장 1위’라는 빛나는 타이틀이 다소 무색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부러운 회사다.



지난달 ‘글로벌 금융위기 1년’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외 기업이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맸는지 실감했다. 비용절감 캠페인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런던에서 일하는 어느 전직 리먼브러더스 직원은 회사가 팔린 뒤엔 각종 비용이 깎이고 심지어 화장실 휴지의 질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금융위기는 한풀 기세가 꺾였지만 일터 분위기는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의 한 칼럼은 미국의 생산성이 6.6% 올랐다는 ‘좋은 뉴스’에 딴죽을 걸었다. 결국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의 9월 실업률이 26년 만에 가장 높은 9.8%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그나마 일자리라도 있는 이들은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공감이 갔다. 칼럼은 90%의 ‘행복한 취업자’들조차 해고된 옛 동료의 빈자리를 보면서 ‘내상(內傷)’을 입는다고 주장한다.



나아지고 있는 국내총생산(GDP)이나 산업생산 같은 거시경제 지표에서 취업자들이 느끼는 상실감이나 실직의 두려움까지 읽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애써 다독거리는 ‘좋은 직장’이 많았으면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 나오는 노동자처럼, 더 빨라진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고마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많은 이를 위해서라도.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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