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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해무리굽 청자’의 비밀 장보고 무역활동 보면 풀린다

‘전남 강진군 지역-중국 저장성 지방-일본 후쿠오카 일대.’

한·중·일 학자들은 이들 세 지역에서 발견된 ‘해무리굽 청자’ 파편 성분을 분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결과 세 곳에서 나온 청자 파편의 유약성분 등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마디로 장보고의 활발한 무역활동 때문이었다.

◆해무리굽 청자 수수께끼=장보고의 청해진 옛터인 전남 완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강진군 대구면. 청해진에서 연륙교와 배를 이용해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 신라시대 돛단배를 탄다 해도 바람만 좋으면 1시간 정도면 도착 가능하다는 것이 고선박 연구가인 마광남씨의 설명이다.

강진군 일대는 9~14세기에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가마터가 현재까지 180곳 넘게 확인됐다. 특히 신라시대 때 해무리굽 형태의 청자가 생산된 것을 입증하는 가마(용운리 63호 등)가 1990년대에 발견됐다. 강진군은 해강도자미술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 지역의 청자는 중국 웨저우요 청자의 유약성분과 비슷한 특징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강진군 지역의 해무리굽 청자는 착색재료만 웨저우요 청자와 달랐다고 한다. 흙 성분 자체가 중국과 달랐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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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장보고의 활동시기가 강진지역에서 발견된 해무리굽 자기파편이 생산된 시기와 겹치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도자기 연구의 권위자인 린스민(76) 전 영파박물관장은 “청해진 인근에서 발견된 자기의 파편이 웨저우요의 생산품과 일치하고, 유약의 색이나 굽는 방법이 같다”며 “웨저우요가 가장 활발히 생산되었던 시기가 장보고의 상단 준비 기간과 일치하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의 최고급품인 웨저우요 생산 기술이 장보고에 의해 한반도로 반출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숭실대 김문경(역사학) 명예교수도 “강진 도요지에서 웨저우요 방식으로 생산된 자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활동한 9세기와 일치한다”며 “장보고는 단순히 신라-당-일본-동남아-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중개무역뿐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도자기 기술을 들여와 청해진 일대에 생산기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장보고는 지금까지 알려진 인물 중 해외 기술을 들여와 이를 기반으로 창업한 최초의 벤처사업가”라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신세계 이명희 회장도 “장보고는 창업의 거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도자기는 요즘 반도체 같은 것”=한·중·일 학자들은 강진에서 만들어진 신라 도자기가 장보고 시대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자리잡았다는 주장을 한다. 일본의 사학자인 요시오카 간스케(작고)는 “후쿠오카 일대에서 출토된 해무리굽 청자 파편들에 사용된 흙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서 생산된 것”이라며 “9세기 이 일대에서 생산된 청자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중국 양주대의 주장(朱江·상과대) 명예교수도 “내가 살고 있는 양저우의 나성 터에서 출토되는 한반도산 청자가 고려청자가 아니라 전남 강진 일대에서 생산된 신라청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고학자인 당성황이 쓴 『중국 도자기예 대(對) 조선요업의 중대 영향』이란 책에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웨저우요를 원본 삼아 청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도자기산업의 기초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려 초에 고려에서 중국 지역으로 교역된 물품 목록을 기록한 문헌을 보면 청자가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즉, 이들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신라 말기부터 이미 청자는 한반도에서 중국 지역으로 수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장보고 시대의 도자기 수출은 현재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나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 등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것과 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가 뒤늦게 기술을 들여와 세계적인 자동차를 만들고,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장보고 역시 초기에는 웨저우요 기술을 배워와 국내에서 우수한 청자 기술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 팀장=김시래 산업경제데스크 ▶취재=김문경 숭실대(역사학) 명예교수, 천인봉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창규·염태정·이승녕·문병주·강병철 기자 ▶사진=안성식·오종택·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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