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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출전 ‘얼짱’ 태권도 대표 박혜미

“모델이야, 운동선수야?”

박혜미가 태릉선수촌 태권도 전용훈련장에서 기본 대련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호형 기자]
태권도 국가대표팀 여자 67㎏ 이하 급 박혜미(23·삼성에스원)가 자주 듣는 말이다. 그는 1m75㎝의 헌칠한 키에 뛰어난 미모를 갖췄다. 실력(공인 4단)도 출중하다.

‘태권도계 대표 얼짱’으로 통하는 박혜미는 대기만성의 전형이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성공’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무명의 설움을 딛고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다. 지난 5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경선(고양시청)을 꺾는 파란을 연출하며 덴마크 세계태권도선수권(10월 14~18일) 출전권을 획득했다.

박혜미는 제주 중문초등학교 6학년 때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다. 시작한 동기는 아주 순진하다. 동네 체육관에서 관원 모집 시 내건 문방구 상품권이 탐나서다.

중문중·삼성여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키만 컸지 세기가 부족했다.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불러주는 대학이 없었다.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지원받는 체육 장학생은 꿈도 꾸지 못했다. 비장학생으로 경희대에 어렵사리 입학했다.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 김혜숙(50)씨는 딸을 외지로 보내기 싫어 운동을 그만두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입성했지만 대학 2학년까지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같은 또래의 임수정(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동기들이 1위에 오르는 것을 쓸쓸히 지켜보는 신세였다.

‘내 길이 아닌가 싶다’는 패배감이 밀려왔다. 운동을 그만두려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는 ‘딱 1년만 더 해보고 미련 없이 포기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전과 오후 훈련에 이어 저녁 수업을 마친 뒤에도 밤 12시까지 샌드백과 싸웠다. 그는 “하루에 1000번 이상 발차기를 해야만 잠을 이룰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주무기인 얼굴 발차기 공격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졌다. 노력은 달콤한 결실로 이어졌다. 대학 3학년 때인 2007년 첫 태극마크를 단 뒤 베이징 세계태권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 박혜미는 기로에 섰다. 한국이 선택한 올림픽 체급은 57㎏ 이하와 67㎏ 이하 급. 당시 그의 체중은 63㎏으로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체급을 내리거나 올려야 했다. 사실 체중을 올리는 편이 유리했다. 57㎏ 이하 급은 경희대 동료 임수정, 67㎏ 이하 급은 황경선이 유력 주자였다.

경희대 입장에서는 세계무대 경험이 풍부한 임수정의 출전을 바랐다. 박혜미는 체중을 내려 친구의 지원군으로 나섰다. 그는 임수정의 강력한 라이벌 이성혜(삼성에스원)를 꺾는 등 선전했지만 감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가슴으로 울었다.

올림픽 열풍이 가신 뒤 그를 잡기 위한 스카우트전이 뜨거웠다. ‘2012년 확실한 올림픽 금메달감’이라는 평가 속에 실업팀들이 거액을 베팅했다. 보통 대학 졸업 선수들의 몸값은 계약금과 연봉을 포함해 5000만~6000만원이었지만 그는 억대에 이르렀다. 올림픽에 한이 맺힌 그는 3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명가’ 삼성에스원을 택했다.

올해 초 박혜미는 올림픽 체급인 67㎏급으로 올렸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최강자’ 황경선의 벽을 넘어야 했고, 끝내 그 벽을 넘어섰다.

7일 출국하는 박혜미는 “얼굴보다는 실력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덴마크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뒤 2012년 런던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현승 기자 , 사진=이호형 기자



박혜미는 …

■ 생년월일 : 1986년 11월 15일

■ 출신교 : 제주 중문초-중문중-삼성여고-경희대

■ 가족 : 박종협(54)-김혜숙(50)씨의 1남1녀 중 장녀

■ 주무기 : 얼굴 내려찍기, 얼굴 뒤후리기

■ 별명 : 얼짱, 햄(이름 혜미를 줄여서)

■ 좋아하는 연예인 : 조인성

■ 좋아하는 노래 : 바비 킴 ‘고래의 꿈’

■ 신조 :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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