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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중국 ‘상전벽해’ 20년

1989년 중국 항저우에 갔을 때 맨발의 인력거꾼들이 비 오는 거리를 질주했고 안개에 젖은 서호에선 남루한 옷을 입은 처녀들이 차를 팔고 있었다. 서호는 새벽의 짙은 안개와 그 속에 숨은 처녀들로 인해 더욱 신비로웠다. 그들은 분명 가난했지만 눈빛은 수줍음과 활기,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한 올의 적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호는 낮이 되면 시골에서 온 관광객으로, 밤이 되면 쌍쌍의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자영 상점이 중국 전역에 10만 개라고 했다. 젊은 중국이 술렁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가난조차 행복해 보였다. 그해가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이듬해 백두산 가는 길에 청산리에 들렀을 때 10세가 될까 말까 한 소녀가 혼자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가끔 버스가 흙먼지를 쏟아놓고 갈 뿐인 망망한 산중에서 무엇을 파는 것일까. 봤더니 얘기책이다. 파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고 한 권에 1각이란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학교가 파하면 학생들이 온단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 눈엔 숲뿐인데, 열 권을 빌려줘야 겨우 1원인데 그 소녀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망연한 눈빛이 마음에 걸려 차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가난이란 역시 고달프고 지루한 것이었다. 중국이 변한다지만 벽지까지 변하는 것은 이 소녀의 기다림만큼이나 요원해 보였다. 이 해가 중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였다.



그 후 중국에선 누군가의 말 그대로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거리를 메우던 자전거 행렬이 자동차로 바뀌고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엔 세계적 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물자는 넘쳐났다. 그러나 예전, 항저우에서 봤던 그 ‘눈빛’ 들은 사라졌다. 거리에 나서면 수줍음과 호기심 대신 느끼한 욕망과 자부심, 귀청을 때리는 경적 소리와 메마른 표정, 그리고 가끔 칼끝 같은 적의가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부유해지기 위해 치른 대가였고 통과의례(?)였다.



얼마 전 그러니까 근 20년 만에 중국의 시골을 다시 찾게 되었다. 매번 베이징, 아니면 상하이에서 열리던 바둑 대회가 이번엔 묘족들이 사는 봉황고성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가는 길마다 새 집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변화가 벽지까지 몰려가고 있었다. 성 하나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 두세 배씩 되니 중국 구석구석을 바꾸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공사가 치러질 것인가.



오지라고 알고 있던 봉황에 가서 깜짝 놀랐다. 강에서 잡은 말린 새우를 파는 소녀들의 눈에서 다시 예전 항저우에서의 그 눈빛들을 봤다. 강을 따라 줄지어 선 옛집과 가게들은 잔잔한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마분지에 ‘10원에 3개’라고 써놓은 채 좌판을 펼치고 있는 아줌마들은 괜히 환하게 웃고 눈앞을 흐르는 강에선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자맥질이 한창이었다. 이들은 청산리의 그 소녀만큼이나 오래 기다리다가 이처럼 행복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행복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을까. 머지않아 이곳에서도 저 근사한 눈빛들과 기분 좋은 술렁거림은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더구나 가난을 털고 부자로 가는 길은 멈출 수 없는 기차를 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년간 중국을 오가며 스쳐 지나간 풍경이 그랬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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