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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희 아카데미’ 대학에 설치해야

프로의 시대인 현대에 나라의 운명은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가지고 국가 정책 입안과 시행에 에너지를 투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외교관은 세 치 입으로 나라의 운명을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무한 책임과 동시에 존경받는 최고 엘리트 집단이다.



따라서 외교관은 그 누구보다도 전문가다워야 하고 외교관을 선발하는 제도는 그 무엇보다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구닥다리 제도에 안주해서는 희망이 없다.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골고루 인재들이 배출될 수 있는 참신한 제도가 선행될 때 필요한 전문가들이 발굴된다.



때마침 정부가 외교아카데미를 세워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프로 외교관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안을 내놨다. 현행 외무고시를 존속시키면서 외교관 선발 인원의 절반을 석사과정의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뽑는 방안이다. 오랜 타성을 깨고 전문교육기관을 통해 외교인재를 수혈하겠다는 것은 매우 참신하고 기대할 만한 방안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말 경쟁력 있는 외교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차제에 한 발짝 더 진전된 형태의 교육 시스템을 제안한다. 그것은 외교 인력의 교육을 풍부한 글로벌 교육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대학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 과정의 외교관 스쿨을 로스쿨처럼 대학에 설치,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한편 관주도형의 외교아카데미는 재교육기관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방안은 외교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순혈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취지와도 부합한다. 아울러 낡은 형태의 외무고시도 이 기회에 폐지하는 것이 좋다.



대학이 최고 전문 교육기관인 이유는 그것이 시세에 따라 만들었다가 없애버릴 수 있는 제품생산 라인이 아니라 고도의 전문성과 아울러 깊고 넓은 이상과 철학이 뒷받침되는 상아탑이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가 양성하려는 외교전문가 역시 소통 능력에 지장 없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국제 정치·경제의 흐름을 읽어내는 비전, 그리고 투철한 국가관과 헌신성을 가진 인재들일 것이다. 하지만 4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외무고시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인재들을 선발하는 데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외교아카데미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 역시 부정적이다. 법조인을 양성하는 로스쿨이 법무부 소관의 법률아카데미가 아니듯이 외교부 소속의 외교아카데미라면 외교관을 양성하는 데 결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석사과정은 대학만이 갖는 고유 영역이다. 외교부는 신입 외교관에게 ‘외교술’을 가르치고 경력 외교관에게는 철저한 재교육을 시키는 역할로 족하다. 대학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두뇌집단이다. 매년 20명의 외교관을 만들고자 석사과정의 대학원대학을 새로 만들어 많은 예산을 투입하느니 기존 대학을 활용하는 것이 세금낭비도 막고 전문 인력도 키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또 하나의 국립 대학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교관 양성에 적합한 대학(들)을 선정하여 전문적이고도 폭넓은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고효율·저비용의 행정을 지향하는 현 정부의 노선과도 부합한다.



결론적으로 대학이 직업양성소가 된다면 그 나라의 미래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듯이 외교아카데미 역시 직업학교화된다면 현 정부의 좋은 취지가 자칫 왜곡될 뿐만 아니라 국가 장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와 국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미래형 외교관 교육기관을 원한다면 역시 교육은 대학에서, 훈련은 외교통상부에서 맡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몇십만의 군대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서희의 후예를 키우는 길이다.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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