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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아이들 돌봐온 천사 부부 한가위에 엄마 잃은 ‘슬기’를 품다

슬기를 새 가족으로 맞이한 박영성(왼쪽)씨가 남편 권태식씨와 아이의 책가방을 챙기며 웃고 있다. “친구도 사귀기 시작했는데 상처를 받을까 걱정된다”는 박씨의 뜻에 따라 슬기의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다. [울산=송봉근 기자]
지난달 30일 울산시 야음동에 사는 김슬기(가명·12)양의 책상 위엔 사진 액자와 곰인형, 빨간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사진과 곰인형은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것이고, 꽃다발은 새로운 가족이 선물한 것이다.



“사춘기인데 엄마 잃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 ”
불우 아동 세 명 2년씩 맡아 키우다

추석을 3주 앞둔 14일 슬기는 엄마를 잃었다. 슬기의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2년 넘게 위암을 앓은 엄마는 미혼모였다. 일곱 살 때까진 종종 슬기를 찾던 아빠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슬기는 친척도 없다. 올여름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뒤 슬기는 교회 목사님 집과 장로님 집 등을 한 달씩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 완전히 혼자가 됐다.



그런 슬기에게 최근 가족이 생겼다. “이모라고 부르라”며 찾아온 파마 머리 아줌마였다. 슬기는 박영성(50)씨의 손을 잡고 경북 구미에서 울산으로 이사 왔다. 지난달 21일 엄마가 돌아가신 지 딱 일주일 되던 날이다.



박씨가 슬기의 사연을 접한 건 지난달 초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소식지에서였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엄마와 사는 아이. 그는 바로 서울의 단체에 전화해 “내가 딸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5년 전부터 갈 곳 없는 아이 셋을 더 길렀다. 1남1녀가 어느 정도 크고 남편의 사업도 자리를 잡자, 평소 하고 싶던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자 엄마에게서 자라던 일곱 살 태호(가명)와 아빠가 직업을 잃은 영윤·영식이(가명) 남매가 박씨의 집에서 2년씩 살았다. “제가 열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엄마 없는 아이를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슬기도 한창 사춘기인데 엄마를 잃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슬기가 다 자라도록 키워주고 싶다는 얘기에 남편과 미국 유학 중인 딸은 찬성했지만, 대학생 아들(19)은 걱정을 내비쳤다. “다 큰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게 쉽겠느냐”는 것이었다. “네가 열두 살에 고아가 됐다고 생각해 보라”는 박씨의 말에 아들은 하루를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자신의 방도 슬기에게 양보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박씨의 가족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지만 슬기는 아니었다. 울산에 온 지 하루 만에 박씨에게 “구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 어른과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불편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내보자”는 박씨의 설득에 눌러앉게 됐다. 지금은 ‘떡볶이 먹고 싶어요’ ‘리코더 사 주세요’ 하는 문자를 보낼 정도로 스스럼이 없어졌다. “이것저것 사달라고 어리광 부리는 걸 보면 정말 우리가 자기 편인지 시험하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면 믿음을 가지게 되겠죠?”



박씨가 슬기의 성과 호적은 그대로 두기로 한 것도 슬기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돌아가신 엄마와의 마지막 끈은 남겨주고 싶었다.



박씨는 지난달 30일 슬기와 쇼핑에 나섰다. 추석 때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게 될 슬기를 위해 새 옷을 사주려는 것이었다. “검은색 재킷을 사고 싶다”며 방문을 나서던 슬기가 박씨에게 물었다. “이모, 오빠야는 언제 와요?” 박씨가 “니는 오빠야만 좋나” 하고 웃어 보이자 슬기가 “제가 언제요” 하며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울산=정선언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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