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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에서의 만세 삼창

이 정부가 한껏 고양됐다. 내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자회견과 설명회를 잇따라 열고 “이제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며 뿌듯해한다. 국운(國運)이라고도 한다. 여당 대표는 “조(兆) 단위 이상의 홍보 효과가 있다”고 하고, 5억 달러(6000억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국가 브랜드가 높아지고, 전시산업과 관광산업이 활성화되며, 외자유치와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도 한다. 황홀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비행기에서 대통령과 장관들이 만세 삼창을 했을까.

김영욱의 경제세상

G20 회의 개최는 마땅히 축하할 일이다. 대통령 말처럼 우리는 이제껏 주변 국가였다. ‘듣기만 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시대’에서 살아왔다.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불공정한 질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제국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주변부 자본주의 이론이 한때 유행했던 건 그래서였다. 핍박받는 신식민지이자, 착취받는 주변부 국가였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이런 체념과 자조를 떨칠 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제질서를 만들어가는 ‘룰 세터(rule-setter)’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세계 최고의 경제협의체(프리미어 포럼)로서 글로벌 경제이슈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이런 모임의 멤버가 되고 의장국으로 선출된 것만도 대단하다.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최초 개최국 타이틀을 따냈으니 어찌 떠들썩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한편으로 걱정과 불안이 싹트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들떠있는 모습이 13년 전과 판박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1996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을 때도 그랬다. 당시 정부도 국운 상승, 선진국 진입, 국가 브랜드 제고, 투자와 수출 활성화 등의 말들을 쏟아냈다. 선진국의 사교클럽에 불과했는데도 정부는 선진국이 됐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국가 신인도가 높아져 수출이 늘고 외자 차입 금리가 떨어진다고 했다. 정부와 기업의 축하 광고도 잇따랐다. 이보다 8년 앞선 88년 11월에도 그랬다. 당시 정부도 외환사용 규제가 철폐되는 국제통화기금(IMF) 8조국에 들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에 달러를 듬뿍 집어줬고, ‘무역 흑자 시대의 경제 관리’라는 제목의 논문을 공모하기도 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잔칫상에 찬물 끼얹는 놀부 심사로 이 글을 쓰는 건 결코 아니다. 또 G20과 OECD는 차원이 다른 모임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OECD는 선진국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만들어진 사교클럽이지만, G20은 세계 경제시스템의 방향과 원칙을 결정하는 모임이다. 또 OECD 가입 때는 반대 여론도 상당했다. 금융시장 개방 등 가입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잃은 게 없다. 그런데도 OECD 얘기를 꺼낸 건 정부가 너무 들떠있는 것 같아서다.

경제를 다스리는 정부는 절대로 흥분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정부 스스로 환상과 자기 도취에 빠지면 나라가 위험해진다. 88년과 96년의 교훈이 그것 아니었던가. 그때는 대통령이 먼저 들떴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IMF 8조국과 OECD 가입이라는 보도가 끝나기도 전에 불황과 외환위기가 엄습했다. 물론 G20은 이들과 다르지만,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세상 이치야 다를 리 없다. ‘룰 세터’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요구가 상당할 것이다.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개최국인 한국부터 앞장서라고 할 수도 있다. 수십 년간 견지해 왔던 수출 강국과 무역 흑자 전략을 바꿔야 할 판이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지, 대책은 무엇인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후진국 원조도 늘려야 하고,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글로벌 대책도 지원해야 한다. 큰돈 들일 일이 수두룩한 상황을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과시와 호들갑은 국민에게도 금물이지만 정권의 경우는 한층 더 해롭다. 이걸 아는 정부라면 속히 깨어나야 한다. 지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일을 챙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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