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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에 꼭 맞는 최현주는 ‘새로운 발견’

수백 년이 지나도 똑같은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그림(회화) 등 시각예술에 비해 공연은 어떨 땐 ‘슬픈 예술’이 된다. 그 슬픔은 공연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인데, 하루살이 같은 소멸 때문이다. 같은 제목에 같은 무대, 같은 출연자라고 해도 오늘의 공연은 어제의 그것과 다르며, 내일의 그것과도 같지 않다. 이런 무상함 때문에 공연예술은 흔히 ‘시간예술’로 불린다.

정재왈의 극장 가는 길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 기록자(평론가 등)들은 그 무상한 시간성을 글로써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헛수고가 되기 십상이다. 시각예술인 회화나 복제예술인 영화에 비해 공연에 관한 텍스트 분석이 현저히 적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나름의 탄탄한 텍스트로 그 시간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클래식(고전)’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달 23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LG아트센터 한국 초연 이후 같은 프로덕션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2005년 해외투어팀 공연이 있었으니,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로서는 적당한 시차인 셈이다. 24일 공연의 메인 캐스트는 양준모(유령.사진 오른쪽), 최현주(크리스틴,사진 왼쪽), 정상윤(라울)이었다.

이날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사이에 둔 ‘러브 트라이앵글(사랑의 삼각관계)’은 개막 초반답지 않게 매우 안정된 하모니를 과시했다. 어릴 적 만난 사춘기의 사랑을 성인용 순애보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라울과 크리스틴의 조합은 힘차고 역동적이었다. 그것은, 회상하건대 초연 때의 류정한-이혜경 콤비 못지않은 중량감을 실감하게 했다.
둘의 하모니는 1막 1장의 노래 ‘나를 생각해 줘(Think of Me)’에서부터 폭발했다.

다만 정상윤이 노래보다 수려한 외모로 먼저 어필했다면, 최현주는 이미지와 노래, 연기 모두 크리스틴 역에 잘 맞았다. 감히 ‘새로운 발견’이라고 치켜세워도 별로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등장은 신선했다. 그게 그녀가 속한 일본 극단 ‘시키(四季)’에서의 혹독한 훈련 결과일까, 아니면 타고난 재능 덕일까? 천재성보다 노력과 집중력을 성공으로 요인으로 치는 ‘아웃라이어’(말콤 그래드웰)의 관점에서 보면 전자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사실 ‘오페라의 유령’은 한 천재적인 광인의 실연(失戀)담을 장중하면서도 비장하게 그린 이야기다. 유령은 공포스러운 존재감만큼 크리스틴과 라울 커플의 사랑을 방해하는 집요한 훼방꾼이다. 따라서 유령역은 그 야수성뿐 아니라 지순함까지 동시에 갖춰야 관객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매우 까다로운 역할이다. 폭넓은 음역을 갖춘 양준모는 그런 감정의 기복을 주제곡인 ‘오페라의 유령’과 ‘돌아올 수 없는 곳(The Point of No Return)’(이상 크리스틴과 듀엣), 솔로곡인 ‘밤의 음악(The Music of the Night)’을 통해 능란하게 표현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극의 발단과 종결까지 6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이 시차를 통해 크리스틴은 유령의 순수한 사랑을 이해하고 숙녀로 성장하게 된다. 어릴 적 죽은 아버지가 마치 신탁(神託)처럼 말한 ‘음악의 천사(Angel of Music)’는 바로 유령이다. 이런 점에서, 유령은 단순히 그녀를 괴롭히는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인생에서 깊은 깨달음을 안기는 ‘아버지의 재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마지막 가면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는 유령은 이렇게 되뇌인다. “가면무도회, 가면들의 무도회(Masquerade).” 그것은 바로 외모(흉측한 몰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내면(순수한 사랑)을 직시하라는 유령의 잠언이다.

원작의 고향 런던에서 23년 동안 공연 중이고, 브로드웨이에서 21년간 9000회 이상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분명 소멸하지 않은 당대 최고의 뮤지컬 클래식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이 ‘영원성(timeless)’을 자랑하듯이 ‘오페라의 유령’도 유한한 시간성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8년 만에 다시 선보인 한국의 ‘오페라의 유령’도 일단 그걸 증명하기엔 손색이 없다. 그러나 총 공연 기간 11개월 중 아직 초반이다. 어제의 공연이 오늘과 다르듯, 폐막 무렵 ‘오페라의 유령’이 여전히 한국의 뮤지컬 클래식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초지일관에 달렸다.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LG아트센터 기획운영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공연예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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