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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녀는 어디 갔을까

참 이상하게도 단군설화의 여주인공인 웅녀의 이미지는 한국의 유물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신화 속 불가사리의 몸통이 곰과 조금 비슷한 정도다. 웅녀의 존재가 시베리아나 홋카이도 지역 캐나다의 인디언들처럼 곰을 숭배하는 토템 신앙의 흔적이라면, 고구려·백제의 고분이나 가야의 암각화에서라도 흔적을 찾을 법한데 곰의 탈을 쓴 샤먼의 모습도 우리 유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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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쑥만 먹는 힘든 입문식을 견디지 못해 조상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수렵도·백호도와 각종 민화의 단골 재료다. 혹자는 이를 곰 토템 국가인 맥국이 삼족오를 숭배하는 고구려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라 하고, 어떤 이는 실제 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미·개마·검·고마 등의 단어와 함께 신을 상징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만약 곰이 정말 신을 뜻한다면, 마치 야훼란 단어를 오랜 세월 동안 함부로 책에 쓸 수 없었듯이 곰을 그림에 가두어 둘 수는 없었을 법도 하다.

융 심리학자들은, 곰에 대해 동면이 끝나면 다시 깨어나는 데다 검은 털에 느릿느릿 걷는 모습이 대지의 재생과 부활에 딱 들어맞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켈트 족의 전설적 인물인 원탁의 기사 아서왕의 고어 artoriser와 곰을 뜻하는 웨일즈어 artos가 그 어원이 같다는 점에서 켈트 족의 원시 조상 숭배 역시 곰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곰은 덩치는 커도 물고기 같은 먹이를 잡을 때는 매우 날렵하고, 육식동물 치고는 꿀을 좋아해 벌집을 건드려 혼이 나는 이미지라 꾀 많은 토끼와 대비되기도 한다. ‘여우 같은 며느리 하고는 살아도 곰 같은 며느리는 싫다’는 표현도 이해가 간다. 또 수퇘지는 남성적인 측면으로, 암곰은 여성적 측면의 과잉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군설화가 여성을 종속시키려는 남성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이의 시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도 같다.

올해는 마침 개천절이 추석 다음 날이라서 여성들은 곰처럼 일하느라, 남성들은 슬금슬금 여자들 눈치 보느라, 모두 진이 빠질 것 같다. 그 와중에 단군설화 본래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이들은 별로 되지 않겠지만, 한국인은 강한 단결력, 언어와 음식 등 전통문화의 끈질긴 보존, 강한 교육열 등으로 유대인만큼이나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 다문화 국가와 국제화 시대가 도래했으니, 단순한 배타적 민족주의보다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민족 개념이 필요할 것 같다. 응원하듯 과시하는 집단주의, 순혈주의, 인종차별적 태도 등은 쓸데없는 견제와 혐오감만 불러일으키고, “뭔가를 보여 주겠다”는 식의 조급함 역시 일만 그르친다. 그저 곰처럼 느릿느릿 추운 겨울도 잘 견디는 인내와 장고가 지금 시점에선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단시간에 해치워 외국인이 “빨리빨리”란 말부터 먼저 배운다지만, 한국인의 고태적 심성은 훨씬 여유가 있었다. 불과 수십 년 된 건물도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부수어 버리고, 넘쳐 나는 가전제품의 폐기물로 골치를 썩고 있지만, 원래는 천 년을 넘게 견디는 건축과 도자기·인쇄 기술을 자랑하며, 영원을 지향하는 민족이 아니었던가. 거짓말 능하고 줄 잘 서는 잔꾀로 재빨리 출세하고 돈도 쉽게 모으는 잘난 이들이 넘쳐 그런지, 곰같이 미련하게 자기 길을 가는 진짜 한국인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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