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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비합리성이 경제를 움직입니다”“그래서 ‘보이는 손’이 필요하단 말이군요”

예고된 대로 이번부터 몇 주 동안 다윈의 서재는 BBC ‘경배5’(경제경영 배후의 과학서 5선) 시리즈로 꾸며진다. 독자들의 인터넷 투표 결과 『야성적 충동』 『아웃라이어』 『넛지』 『블링크』등이 이 부문의 상위에 올라왔다. 다윈은 첫 번째 책으로 『야성적 충동』을 선정했고, 공저자인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애커로프 교수를 대담에 초대했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21세기 다윈의 서재<16>-조지 애커로프·로버트 쉴러 『야성적 충동』

다윈=경제학자를 제 서재에 초대하기는 처음이네요. 예일대 경제학과의 로버트 쉴러 교수와 함께 올해 출간하신 『야성적 충동』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Animal Spirits’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동물학이나 심리학, 어쩌면 정신의학과 관련된 책일 거라 짐작했었죠. 그런데 그게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선생이 썼던 중요한 용어더군요. 제가 좀 무식해요. 하하.

애커로프=별 말씀을요. 정말 무식한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현대 경제학자들 중에서 이 용어 자체와 그것의 진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케인스는 1936년에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썼지요. 거기서 인간의 비경제적 동기와 비합리적 행동이 경제 활동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시장주의 경제학의 대전제에 큰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었죠. ‘야성적 충동’은 인간의 비합리적 본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한 용어입니다. 심리적 요인이야말로 경제 활동의 원동력이라는 얘기죠.

다윈=‘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한 애덤 스미스가 아주 섭섭하겠습니다. 그는 인간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존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뉴스위크에서 발표한 세계 100대 명저 목록에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은 끼어 있어도 스미스의 『국부론』은 없더군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역행하며 케인스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애커로프=낙관적이시네요. 저와 쉴러는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 개념을 바탕으로 최근 6년간 진행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분석해보았지요. 결론은, 거시경제에 내포된 불완전성, 비일관성, 불확실성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케인스는 19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이 인간의 경제적 동기와 합리적 행동에서 온 것이 아니라 비관과 낙관을 넘나드는 인간의 변화무쌍한 심리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었죠.

다윈=듣고 보니 요즘 크게 주목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이 케인스에서 시작된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경배5’의 첫 책으로 『야성적 충동』을 선택한 이유도 그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 경제학도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선생과 같은 주류 경제학자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에서 야성적 충동이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 착각, 이야기와 관련된다고 하셨는데요. 조금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애커로프=공정성에 대해 예를 들어보죠. 폭설이 내린 후 철물점에서 눈삽의 가격을 5달러 인상했다고 해봅시다. 공정한 일일까요 아닐까요? 기존 경제학에 따르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피험자들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82%가 불공정하다고 답했죠. 철물점이 추가적인 노력이나 비용 처리 없이 고객들의 불운을 이용해 가격을 올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손해를 보면서까지 무임승차자를 처벌하는 행동도 비슷한 경우죠. 이런 예들은 공정성에 대한 고려가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보다 강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윈=몇 년 전 ‘사이언스’에서 읽었는데, 인간뿐만 아니라 원숭이들도 불공정한 처사에 ‘항의’를 한다던데, 그렇다면 공정성의 뿌리는 꽤 깊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애커로프=맞습니다. 한편 야성적 충동은 우리가 만든 이야기와도 연관되어 있어요. 부동산이나 주식에 대한 책을 한번 들춰보세요. 대개 이런 식입니다. ‘토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땅을 구입하면 손해 볼 일은 없다’ ‘아무개가 어떤 주식을 구입했는데 얼마 후에 대박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경제 활동이 그런 식의 이야기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하면 마치 전염병의 확산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되지요.

다윈=이른바 증권가의 ‘지라시’ 같은 것이 주가 변동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말입니까?

애커로프=네. 기존 경제학자의 분석이 무력해지는 대목이지요. 사람들은 뒷소문이나 이야기 등에 심리적으로 아주 민감합니다.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주어지는 정보의 형태가 어떤가에 따라 기억 능력이 달라집니다. 가령, 이야기 형태로 주어진 정보는 쉽게 저장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되지요.

다윈=그렇군요. 예컨대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다 알지 못해도 그 이야기 구조는 전부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매력적인 이야기에 끌린 나머지 합리적인 방식으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얘기군요.

애커로프=친구가 땅을 사서 큰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갑을 터는 게 우리 아닙니까?

다윈=나도 그런 이야기에 솔깃해 철도 주식을 샀다가 쪽박을 찬 일이 있었어요.

애커로프=최근 전 세계를 공포와 두려움으로 몰아넣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부패와 악의의 영향력을 보여주지요. 이 사태는 이익에 눈먼 대출업체들이 초기의 낮은 이자를 강조하고 나중의 높은 이자는 숨기는 방식으로 대출자들을 현혹시킨 부패 사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은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다윈=이제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로군요. 정부의 손짓이 벌써부터 보입니다. 오늘, 이렇게 결론 내리지요. 케인스의 부활 뒤에는 인간에 대한 과학이 있다!

※애커로프 교수는 중고 자동차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불량 중고차(레몬)만 넘치게 된다는 이른바 ‘레몬 시장 이론’으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다음 번 ‘경배5’(경제경영 배후의 과학서 5선)에서는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소개합니다.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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