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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해저드보다 무서운 와이프 해저드

A는 낯을 가리는 편이다. 초면의 인사가 라운드 파트너로 동반하게 되면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뜻이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79>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망신 당하면 큰일인데….’ ‘골프를 잘 쳐서 좋은 인상을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평소 보기 플레이 정도는 너끈히 하는 실력인데도 초면의 파트너가 끼는 날이면 더블 보기와 트리플 보기를 밥 먹듯 한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사람과 라운드를 하게 되면 적잖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아예 대놓고 본심을 드러낸다.

“중앙일보 골프 담당 기자라고요. 어디 그 실력 좀 봅시다.”
이런 날은 볼이 잘 맞을 리 없다. 지나친 부담감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이것도 실력의 일부라고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최근 금융업계 임원 B와 라운드를 했다. B를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B는 라운드에 앞서 겸손하게 자신의 실력이 보잘것없다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 건 1번 홀 티샷을 마친 뒤였다. 그는 분위기가 썰렁해질 때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일행을 즐겁게 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해저드가 뭔지 아십니까.”
어리둥절해하는 일행에게 B는 물 흐르는 듯한 언변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저기 보이는 ‘워터 해저드’는 제일 쉬운 축에 속합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와이프 해저드’이지요. 라운드에 앞서 집에서 와이프한테 핀잔이라도 듣고 나오면 샷이 잘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해저드가 있습니다. 바로 ‘셀룰러(cellular) 해저드’입니다. 라운드 도중 휴대전화 벨이 자주 울리면 샷을 망치기 일쑤잖아요.”

우리 일행 모두 “맞다”며 박수를 쳤다. 라운드가 계속되면서 B의 입담도 이어졌다.
“저는 골프를 하면서 식성도 바뀌었답니다. 예전에는 ‘자장면’을 좋아했는데 요즘엔 ‘설렁탕’을 즐긴 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자장면에는 ‘양파’가 많이 들어가고, 설렁탕엔 ‘파’를 많이 넣잖아요. 그래서 자장면을 멀리하고 설렁탕을 좋아하게 됐다는 말씀이지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그의 재치 있는 입담에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골프 실력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그의 재주가 놀라울 뿐이었다.
“여러분, ‘굿샷’의 반대말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예전에는 ‘뽈(ball)!’이었지요. 근데 최근에는 ‘가서 보지요’라고 바뀌었답니다.”

B는 그날 80대 중반 스코어를 기록했다. 전반에는 보기 플레이를 하더니 후반에는 파 세이브 행진을 계속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인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일행에게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를 설파했다.

“어린 시절 일찌감치 출세하는 ‘소년급제’는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평생의 파트너를 잃는 ‘중년 상처’도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말년 무전’이 되면 노년이 곤궁하겠지요. 마지막으로 피해야 할 일은 ‘전반 OECD’입니다. 왜 그런지는 다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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