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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의 배려, 김인식을 위한 배려

한화 감독이 바뀌었다. 발음으로만 보면 한, 화. 두 글자 사이에 ‘큰 대(大)’를 넣은 이름. 한대화 감독이 새 사령탑이 됐다. 그는 한화를 크게 만들 이름을 타고 난 걸까.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29>

한대화 감독은 현역 때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다. 1986년부터 93년까지 해태의 전성기 주축 멤버였고, 94년 LG로 옮긴 첫해에 트윈스가 챔피언이 될 때도 해결사였다. 그렇게 화려한 한대화였지만 현역 초창기는 불운했다. 83년 OB에 입단한 그는 간염과 허리 통증 탓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85년 겨울(11월 23일) 해태로 트레이드 됐다. 그때 한대화는 트레이드를 거부했다. 대전고 출신의 한대화는 이듬해 창단하는 대전 연고팀 빙그레로 가게 해달라며 버텼다. OB는 결국 86년 1월 11일 한대화를 임의탈퇴시켰다.

그때 한대화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 있다. 당시 해태 수석코치였던 김인식이다. 그는 동국대 시절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은 한대화에게 해태로 오라고 설득했다. 한대화는 3월 22일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제자를 다독였고 낯선 해태에서 잘 적응하도록 배려했다. 그해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을 시작했다. 한대화는 86년부터 91년까지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6년 연속 차지했다. 한대화 전성기는 그렇게 김인식의 설득과 배려로 가능했다. 당시 해태 선수들은 그런 ‘배려의 리더’ 김인식을 믿고 따랐다.

김인식의 배려는 낯선 일이 아니다. 2003년 두산 감독을 그만둘 때, 그는 뒤에 오는 후배 감독을 위해 먼저 자리를 비켜줬다. 선동열이건 김경문이건, 후임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배려였다. 지난 봄 모두를 감동시켰던 WBC 대표팀의 감독을 맡을 때, 다른 모두가 소속팀 입장을 내세워 꺼렸던 자리를 그는 백의종군하듯 수락했다. 그건 야구계 전체를 위한 배려였다. 이번에 한화에서 물러날 때도, 그는 아무 말 없이 후임감독 한대화를 위해 자리를 비켜줬다. 자신의 야구 인생에 기념비가 될 통산 1000승에 고작 20승을 남겨놓은 그였다. 이처럼 김인식의 배려는 야구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 만하다. 그는 상대를 배려하고, 동료를 배려하라고 가르치는 ‘야구 정신’을 몸으로 실천해 보여준다. 공격을 한 뒤 상대에게 똑같은 공격 기회를 줘야 하고, 내가 잡겠다고 서로 달려들어서는 안 되며, 동료를 위해 나를 희생해 팀 승리의 디딤돌을 놓으라는 교훈을 그는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김인식이 지나간 길에는 그 배려의 흔적이 있다.

그런 김인식을 위한 우리의 배려는 어디 있나. 불과 몇 개월 전 그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던 건 다 잊고 “나는 소속팀 관리 때문에 코치도 못 맡겠다”고 했던 다른 감독들이 벌이는 가을 야구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난달 29일 가을 야구 1차전 시구(始球)를 야구장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가수들보다 인자한 웃음의 김인식이 했다면. 다른 팀에서 물러난 감독을 앞에 내세웠다고 팬들이 실망했을까? 그래 봐야 그는 씩~ 하는 특유의 웃음으로 남보다 앞에 나서려 하지 않고 우리를 배려해줬을 거다. 지금은 분명 나머지 야구계가 ‘국민감독’이라는 짐을 지웠던 그를 배려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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