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지금 막걸리는 우리 전통 막걸리가 아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자신이 직접 복원한 전통주 샘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줄잡아 600여 종이다.
막걸리가 인기다.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고, 수출도 잘된다고 한다. 특히 일본 젊은 여성들이 좋아한단다. 이런 막걸리의 부상에 괜스레 신나 하는 사람이 많다. 애국심의 발로랄까, ‘막걸리=전통’이란 도식이 떠올라서일 터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그런데 누구보다 좋아할 줄 알았던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51ㆍ사진) 소장은 착잡한 표정이었다. “IMF 때도 그랬다. 막걸리 바람에 금방 천지개벽할 것 같이 그랬다. 하지만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안 가 꺼져버렸다”면서 찬물 끼얹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우리 전통주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시작은 사소했다. 전남 해남 출신인 그는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다. 가끔씩 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드릴 술 한 병이 필수였다. “하숙비 타러 가는 주제에 2만원짜리 조니 워커 한 병을 사가곤 했다”니, “술값이 너무 부담스러웠다”는 게 당연했다. 그때 자구책으로 떠오른 게 전통주였다. 양주보다는 싸겠지 싶어서였다. 마침 학교엔 여러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너희 고향에 어른들 드실 만한 술 없냐”고 물어 대답을 들으면 직접 술 빚는 곳을 찾아가 샀다.

큰 병 하나에 4000원 정도면 구했던 전통주를 아버지는 양주보다 더 좋아하셨다. “마시고 나면 몸이 개운해서 좋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알게 된 전통주의 세계였다. 점차 직접 빚어보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쌀은 계속 들어가는 데 술은 안 나오고, 어쩌다 돼도 누룩 냄새만 풀풀 났다”고 했다.

그 뒤 전통주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기능보유자들에게 사정을 해 제조법을 배웠고, 제조 전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자료로 남겼다. 1990년 월간 ‘식생활’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전통주 취재는 업이 됐다.

“체계화된 제조법이 없더라고요. 교수들이 내세우는 이론이 현장에서 먹히지도 않고…. 기술 전수가 제대로 될 리도 없죠. 제주 강술이나 진도 박문주처럼 만드시던 분이 돌아가시면서 복원을 못해 내는 술도 부지기수입니다.”

집집마다 술을 빚어 마셨던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됐기 때문이다. 1909년 개인이 술을 빚는 일을 금지하는 ‘주세령’이 공포되면서였다. 술을 빚으려면 관청에 신고를 해야 했고 술에 비싼 세금이 매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금 부과 방식에 따라 술의 종류도 약주ㆍ탁주ㆍ소주ㆍ일본 청주로 단순화됐다. 광복 후에도 이런 정책은 유지됐다.

“몰래 몰래 술을 빚어 먹으면서 질은 점점 떨어졌어요. 막걸리를 빨리 발효시키려니까 누룩을 많이 넣어야 했고, 소주도 빨리 증류시키려고 불 세기를 강하게 했지요. 그래서 누리끼리한 색깔에 누룩 냄새가 심한 막걸리, 화근내(탄 냄새) 나는 전통소주가 나오게 된 겁니다.”

더 어이없는 일은 그런 ‘저질’ 술이 우리 전통주의 전형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심지어 학계에서도 그랬단다.
“전통주에는 방향(芳香)이 있어요. 재료에서 나는 향이 아니라 곡물과 누룩의 발효 과정에서 생겨나는 향이지요. 복숭아나 딸기를 넣지 않았는데도 복숭아향ㆍ딸기향이 나는 식입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만 해도 ‘전통주의 향기는 곡자향(누룩 냄새)’이라고 하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어요.”

이야기는 다시 막걸리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 막걸리는 우리 전통 막걸리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술은 밀 누룩으로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시키지만, 일본 술은 쌀 누룩을 넣어 당화만 시키고 효모를 따로 집어넣어 발효를 시킨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효모로 속성 발효를 시키는 만큼 일본 술은 빨리 만들 수 있다. 주세를 거둬들이는 입장에서는 빨리 만들 수 있는 술이 효자다.

1930년께 조선총독부는 막걸리 제조방법을 획일화시켰다. 밀 누룩 대신 일본식 쌀 누룩을 사용하고 효모를 첨가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편법’이 지금까지 관행으로 굳어져 내려오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니 막걸리가 인기인 겁니다. 값도 부담 없고 안주도 간단히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걸리가 맛있나요? 마시고 나면 트림 나고 골치 아프잖아요. 그게 다 대충 발효시킨 뒤 식품첨가제로 맛을 맞춘 탓입니다. 그래서야 오래 인기 누릴 수가 없지요.”

그는 “우리 방식으로 제대로 빚으면 막걸리도 1만원짜리, 10만원짜리가 나올 수 있다”면서 ‘전통주→막걸리→싸구려 술’로 이어지는 세간의 인식을 안타까워했다. 일본식으로 만든 싸구려 막걸리의 단점이 마치 우리 전통 막걸리의 한계인 양 ‘누명’을 써왔다는 것이다.

또 그는 전통주에 자꾸만 한약재나 지역 특산물을 집어넣는 풍토에도 일침을 날렸다. “매실주ㆍ인삼주 등을 자꾸 만들면 소비자들이 금세 물려 전통주의 생명이 도리어 짧아진다”면서 “쌀과 누룩만 갖고도 얼마든지 깊고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연구소를 세워 전통주 연구와 제조법 보급에 나서고 있다. “전통주를 세계화시키기 전에 우리부터 전통주를 알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서다. “우리가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우리가 마시지도 않는 술을 어떻게 우리 대표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내놓겠느냐”는 박 소장은 “‘김치 세계화’가 가능했던 건 우리 국민 모두가 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우리 전통주가 세계 어느 명주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향이 깊고 숙취가 없다는 게 큰 장점”이란 것이다. 기대도 크다.“술이 다른 나라로 가면 술만 가지 않습니다. 음식 문화를 함께 갖고 갑니다. 와인과 맥주도 그랬지요. 우리 전통주가 한식 세계화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겁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