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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 직후 세워진 일본 해운회사 건물의 재탄생

인천 아트플랫폼 안에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사무소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1888년)과 1902년에 세워진 옛 군회조점이 있다. 두 건물 모두 해운회사 건물로 그동안 건축연도를 몰라 막연하게 개항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다가 리모델링 공사 중에 지붕 속에서 상량문이 발견돼 정확한 건축 시기가 밝혀졌다. 이처럼 일찍 해운회사 건물이 세워진 것은 인천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었다. 1883년 인천 개항 후 우리나라와 통상을 체결한 국가들은 인천항에 정기항로를 개설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와 부산을 운항하는 정부 관할 항로의 일종인 이른바 ‘명령항로’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항해보조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인천에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던 처지였다. 그런데 영국인이 운영하는 이화양행이 1883년 8월부터 인천과 상하이를 오가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자 이에 다급해진 일본은 그해 10월부터 인천까지 항로를 연장하였다. 이후 인천에는 여러 개의 해운회사가 들어섰으며, 군회조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건물은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에 이어 인천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중 둘째로 오래된 것이다.

두 건물 모두 붉은 벽돌로 벽체를 구성하고 트러스를 걸었으며, 지붕에는 일본식 기와를 올려 마감했다. 1890년 이후 일본에서는 공공건축물에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이 벽돌의 일부가 우리나라에 수입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벽돌벽에 사용된 줄눈 크기는 가로줄눈 7.6㎜, 세로줄눈 9.1㎜였으나,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한다. 군회조점 건물에 사용된 줄눈의 크기는 가로줄눈과 세로줄눈 모두 7㎜이며, 줄눈의 형태는 보기 드문 둥근 줄눈으로 상당히 아름답다.

인천 아트플랫폼 위 블록에는 19세기 말 인천에 진출했던 일본은행 지점 건물 세 채가 남아 인천의 위용을 상징하고 있다. 근대시기 사무소 건축물이 한곳에 밀집돼 현존하는 곳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다. 이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19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문물의 유입 창구였던 인천의 영화를 되새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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