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인간이란 무엇인가 알려면 인간 아닌 것의 시선으로 봐야... 내가 쓰는 건 SF가 아닌 철학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48)는 한국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소설가다. 그의 『개미』가 130만 부 팔린 것을 비롯, 『뇌』85만 부, 『나무』95만 부 등 한국에서 누적 판매 부수를 따져보면 500만 부가 넘는다. 지난 7월 완간된 장편 『신』(전 6권·열린책들) 역시 얼마 전 100만부를 넘어섰다. 도대체 베르베르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이 무엇이기에.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 온라인 게임의 스토리 구성에도 참여해온 이인화(43·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씨가 얼마 전 네 번째 방한한 베르베르를 만나 그의 작품 속 스토리 텔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제 소설을 ‘개미’나 ‘신’ ‘외계인’ 등 소재로만 보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만 보는 것과 같다”며 “이야기 속 ‘인간’에 주목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인화=베르베르란 작가의 책을 한국이 프랑스보다 더 많이 읽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당신 소설에는 다른 나라 독자들이 미처 읽어내지 못하는 미래적 가치가 있고, 비디오 게임처럼 디지털 미디어의 상호작용적인 스토리 텔링도 있다. 한국 독자들의 자질이 대단히 높다는 점은 틀림없는 것 같다.

베르베르=그렇다. 한국인들이 디지털 문화산업에서는 앞서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디지털 게임은 앞으로 더 세계적인 추세가 될 것이고,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난 내 작품을 종이 위에 펼쳐지는 비디오 게임이라 여긴다.
『신』 같은 작품을 쓸 때 처음에 그림을 그려놓았고, 등장 인물 리스트도 만들었다. 난 롤 플레이(role play)에 익숙한 컴퓨터 게임 세대다. 그게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게임은 현실을 잊게 해 위험한 점도 있지만 술과 마약보다는 낫지 않나(웃음).

이인화=1993년 소설『개미』를 읽었을 때 앞으로 내가 생물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소설을 쓰지 못할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물론 실천은 못했지만(웃음). 당신 소설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인류 진화의 주제(『아버지들의 아버지』『뇌』『빠삐용』), 인간 영혼의 주제(『타나토노트』『천사들의 제국』『신』), 타자가 본 인류 사회 주제(『개미』『지구인은 우리의 친구』). 결국 하나의 문제의식이 보여지는데 그게 ‘포스트 휴먼’으로, 인간 이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인간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당신의 작품엔 다른 SF 작가들이 다루듯 보다 사실주의적인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르베르=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것을 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작품을 통해 ‘아주 색다른 작품’을 보여주는 거다. 카메라로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개미』,『신』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외계인이 우리를 보는 것 같은 시선, 『아버지들의 아버지』처럼 과거에서 바라다보는 시선은 모두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 내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간이 아닌 것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봐야 했다. 수학자 괴델이 말하기를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시스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다. 시스템 밖에서 내가 바라본 인류는 낭떠러지를 향해 뛰어가는 양떼 같다. 작가의 역할이란 ‘저기 위험이 있다’며 길을 돌리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가장 인기를 얻거나 성공한 사람들은 ‘그쪽에 뭔가 좋은 게 있으니 빨리 가보라’ 하고 재촉하는 자들이다. 옛날에는 종교인나 정치가들이 방향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했지만 요즘에는 SF 작가들이 이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작가들이 유희· 오락의 역할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역할도 하고 있는 거다. 인류 발전과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인화=당신 소설의 장점이 얼핏 보면 10대 문학 같은데 사실은 심각한 성인 문학이라는 점이다. 잘 보면 시뮬레이션과 내러티브를 결합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베르베르=(웃으며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이인화=처음에 J R R 톨킨(『반지의 제왕』작가)이 영국에서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당신이 프랑스에서 평가받지 않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톨킨의 소설도 전통적인 스토리 텔링에서 보면 굉장히 낯설다. 거대한 공간이 있고 미션을 부여받고,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도 그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지금은 낯설지만 미래의 영화와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베르베르=지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웃음).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일단 젊은 사람들이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젊은이들은 무엇을 받아들일 때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반면 성인들은 선입견이 많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어른이 된다는 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일’ 같다. 빛을 향해 가지만 옆을 제대로 볼 수는 없는 상태에 놓이는 거다. ‘저기 불빛이 있다’ 하고 딱 방향이 정해지면 모든 게 정해진다. 그래서일까. 내가 만든 게임이나 작품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더 쉽게 다가간다.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데, 무엇보다도 나라 전체가 젊기 때문이다. 나는 뭔가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한국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한국이 언젠가는 경제· 문화적으로 강대국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인화=당신은 소설가가 되지 않고 게임 개발자가 됐어도 성공했을 것 같다. 영화감독으로도 재능이 있는데, 여러 스토리 장르를 섭렵해보면 소설의 내러티브(서사)라는 게 답답하고 한계가 있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시뮬레이션 내러티브를 구상해보니 내러티브라는 게 제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베르베르=글쎄, 그 제약이라는 것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를 만들 때 나는 굉장히 자유롭다. 95년에 ‘제2세계’라는 컴퓨터 게임을 하나 만든 적이 있다. 이를테면 ‘세컨드 라이프’ 같은 것으로 가상세계에 파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카냘플러스라는 프랑스 방송국하고 같이 했는데 내가 가상세계에 ‘뭔가 위험한 것’을 만들어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을 빚었었다. 이야기엔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있어야 한다. 잃을 것도 있고, 지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게 삶의 규칙(rule of life)이다. 목적(purpose)과 진화의 가능성(possibility of evolution)도 있어야 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인화=전 세계적으로 SF 작가들의 책이 모두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평가받고 존경받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SF작가면서도 굉장히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당신 작품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베르베르= 난 내가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을 쓴다기보다는 필로소피 픽션(philosophy fiction·철학 소설)을 쓴다고 생각한다. 과학이라는 것은 철학세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라블레가 얘기하기를 “의식이 없는 과학은 영혼의 폐허일 뿐”이라고 했다. 테크놀로지가 바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정신)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그런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게 읽히는 것은 내가 굉장히 새로운 얘기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느끼고 있던 것을 말했기 때문일 거다. 그런 의식 없이, 단순히 개미나 신을 소재로 쓴 얘기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는 좀 화가 난다. 『반지의 제왕』『 스타워스』『듄』 같은 작품들은 모두 단순한 SF가 아니라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한테 호응을 받았다고 본다. 나한테는 성경 자체가 아주 탁월한 SF다. 기적도 있고, 괴물도, 영웅도 ,모험도 가득하고….

이인화=당신은 소설의 ‘재미’란 요소를 매우 강조해왔다. 그 ‘재미’를 어떻게 조율하나.

베르베르= 일단 내 작품의 제1의 독자는 나 자신이다. 당신도 알겠지만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최소한 100번은 넘게 읽는다. 내 소설이 재미없다면 그걸 100번 읽는 일은 벌이다(웃음). 독자가 끝까지 못 읽는다면 저자의 잘못이다. 독자가 거기서 뭔가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저자가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장 고심하는 것은 어떻게 페이지를 넘어가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야기에 대한 긴장감을 갈증이나 허기처럼 불러일으켜야 한다. 독자들의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엔 음악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영화가 더 쉽다. 그런데 소설은 음악 없이 가야 하지 않나.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음악을 들으며 읽는 것이다. 내 책 뒤에 음악 리스트를 같이 넣는 이유다.

이인화=당신의 소설을 읽으며 구글 어스(Google Earth)가 연상됐다. 독자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신적인 힘을 인지해서 느끼도록 하고 그것을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베르베르=난 그림을 즐겨 그린다. 어떤 장면은 스토리북을 만든다. 머릿속에 화면 만들듯이 화면을 그려 만들어놓는다. 그래서 텍스트가 만들어지면 벌집 만드는 식으로 편집을 한다. 문장을 처리하는 게 영화의 각 화면을 움직이고 편집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대담이 끝난 후 기자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었다. 만약에 어린 소녀(혹은 소년)가 다가와 당신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뭐라고 말해주겠는가. 그는 “생각하지 말고 글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쓰세요. 글을 쓰면서 잘 쓰고 있나, 못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일단 전체를 끝내야 수정도 하고 정리도 할 수 있으니까요.”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글쓰기 자체를 즐겨야 합니다. 명예나 부? 그것은 우연하게 오는 겁니다. 목적은 어디까지 좋은 책을 쓰는 것이어야 해요.”



이인화 교수
1966년생.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 『영원한 제국』(93년) 『인간의 길』(97년) 로 ‘작가세계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이상 문학상’ 수상. 영화 ‘청연’, 창작발레 ‘신시21’, 설치미술 ‘아슈켈론의 개’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2’ 칭기즈칸 혈맹의 군주였으며 차세대 온라인 게임으로 불리는 ‘쉔무’(2003년) ‘길드워’(2005년)의 스토리 구성에 참여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몽골리안포스’라는 이름의 바람정령마법사로 이름을 날리는 세계 정상급 게이머이기도 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1961년 프랑스 툴루즈 출생. 7세 때 처음으로 단편소설‘어떤 벼룩의 모험’을 집필했다. 78년(17세) 고교생 신문 ‘유포리’를 출간했다.
툴루즈대에서 법학 공부를, 툴루즈 범죄학연구소에서 범죄학을 공부했다. 극단 STAC을 창설해 히치콕 작품을 공연했다. 82년 파리언론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83~90년 ‘루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과학부 기자로 일했다. 90년 프랑스국립예술연구소에서 영화 시나리오 공부를 했다.
작품으로는 소설 『개미』를 비롯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타나토노트』 『엑시트(만화)』『천사들의 제국『뇌』
『나무(단편집) 『신』『파라다이스(출간 예정)』 등이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