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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마젤란,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 출발 … 265명 중 18명 귀환

마젤란 함대의 세계일주 성공 후 유럽 열강은 미지의 세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1519년 9월 20일 마젤란(1480~1521)은 자신을 포함해 265명을 태운 5척의 함대를 이끌고 최초의 세계 일주 항해의 긴 여정을 떠났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피사로가 1533년 잉카를 정복하기까지는 상업적으로는 실패였기에, 스페인인들은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관리하기보다는 아메리카를 돌아 원래의 목적지인 ‘보석과 향료의 낙원’에 도달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신대륙은 예상보다 훨씬 광대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를 돌아 ‘인도양’(그들은 태평양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으로 가려 했으나 도처에서 뱃길이 막혔다. 신대륙이 북극에서 남극까지 길게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1520년 11월 28일 마젤란 함대는 천신만고 끝에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마젤란 해협을 통과했다. 첫 번째 난관을 돌파했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지의 거대한 바다(태평양)가 펼쳐져 있었다. 이 대양의 횡단은 최초의 달 착륙에 견줄 만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콜럼버스의 항해도 마젤란의 모험과 비교할 수 없다. 콜럼버스는 33일을 항해했을 뿐이고, 상륙 1주일 전부터 해초와 새들 때문에 대륙이 가까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마젤란은 그야말로 망망대해 속에서 희망 없는 100일을 지냈다. 가까스로 1521년 3월 6일 괌에 도착했지만 마젤란은 4월 27일 필리핀 원주민과 전투하던 중 죽었다. 그해 9월 5일, 1080일 동안 247명의 목숨을 희생한 끝에 세계 일주를 마친 생존자 18명이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에서 죽은 동료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엥겔스는 마젤란 이후의 유럽을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순간 세상이 커졌다. 유럽인의 눈앞에는 전 세계의 8분의 1이 아닌 완전한 하나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들은 나머지 8분의 7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퉈 세계로 뻗어나갔다.” 얼마 전 한국의 울산에서 북극해를 지나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잇는 ‘북극해 항로’가 뚫렸다. 공교롭게도 출발점은 한국이다. 북극 주변은 이미 자원 선점을 위한 세계 강국의 총성 없는 전쟁터다.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 아닐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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