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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정통성의 상징, 세 발 솥과 옥새



세 발 달린 솥이 있다. 한자(漢字)로는 ‘鼎(정)’이다. 중국의 춘추전국과 그 이전의 시기에 유행하던 제기(祭器)의 일종으로 대부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제사 때 잡는 희생(犧牲)을 담아 삶는 솥이다. 은(殷) 왕조에 이어 등장한 주(周) 왕실은 이른바 당시 천자(天子)가 존재하는 중원 지역의 중심이었고 그 상징물은 육중한 무게의 이 세 발 솥이었다. 주나라에는 특별 제조품인 아홉 개의 세 발 솥이 있었다. 흔히 ‘구정(九鼎)’이라고 불린다.


▲중국 권력의 상징인 전국시대 때의 세 발 솥(鼎·아래)과 청대 건륭제가 사용했던 옥새. 명분·정통성 등을 뜻하는 이 두 물건은 역대 중국 왕조의 실력자들이 줄곧 추구했던 권력의 상징으로, ‘축선 지향’의 중국식 사고를 나타낸다.
주 왕실의 천자가 중원의 법통을 상징한다면 그 주변에는 여러 제후의 나라가 존재했다. 이른바 춘추(春秋)시대다. 남쪽에 있던 ‘오랑캐’의 나라 초(楚)는 잠재력이 컸지만 세련된 문화가 없었다. 나라의 기틀을 재정비하고 잠재된 국력을 펼쳐 초를 강성한 국가로 키운 이가 초의 장왕(莊王)이다.

그가 한번은 북쪽에서 주 왕실을 침범한 융(戎)족을 토벌하러 나섰다. 천자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행보였다. 북상하다가 주 왕실이 있는 낙수(洛水)에 도착한 장왕의 군대는 주의 천자가 보낸 위문단을 맞는다. 왕손만(王孫滿)이라는 고관이 그 위문단의 대표. 이런저런 의전을 마친 뒤 장왕이 정색을 하고 묻는다. “주 왕실이 보유하고 있는 구정의 무게는 얼마나 된답니까?”

요즘의 중국에서도 흔히 쓰이는 고사 ‘문정(問鼎)’에 얽힌 일화다. 이 문정이라는 단어는 ‘대권을 탐내다’ ‘엉뚱한 흑심을 품다’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대개 제 본분에서 벗어나는 욕망을 일컬을 때 쓰인다.

종주권(宗主權), 또는 법통(法統), 아니면 적통(嫡統)의 상징이 이 아홉 개의 세 발 솥이다. 주나라는 이를 통해 자신이 천하의 주권을 지닌 왕조라는 점을 과시하려 했다. 남쪽의 후발 주자인 초나라의 장왕 또한 이 ‘구정’의 존재를 확인하고, 또한 그를 탐낸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실 이 장에서 이야기하려는 ‘축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의 형태다. 중국 역사에서 그 축선이 물화(物化)해서 나타난 첫 상징이 바로 이 아홉 개의 세 발 달린 솥(九鼎)이다. 축선에 관한 상징물은 세 발 솥에 이어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도장의 형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옥기(玉器)가 있다. ‘화씨벽(和氏璧)’이라는 물건이다. ‘완벽(完璧)’이라는 한자 단어가 등장한 그 고사 속 보물이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보물 중의 보물로 꼽히는 이 옥돌로 도장을 만든 사람이 진시황(秦始皇)이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제국의 군주로서 그가 제작한 것이 이 도장이다. 이 도장이 진 제국을 대표하는 이른바 ‘옥새(玉璽)’다. 이 옥새는 다른 이름을 얻는다. 이른바 ‘전국새(傳國璽)’다. 나라의 법통을 전하는 도장이라는 뜻이다. 이 도장을 손에 넣어야 정통성의 축선에 설 수 있다는 말. 달리 표현하자면 이 도장이 있어야 진짜 나라의 주인이라는 얘기다.

진시황의 진나라에 이어 등장한 수많은 왕조들은 스스로가 정통성을 잇는 축선에 서 있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진시황의 옥새를 손에 넣으려 했다. 진이 멸망한 이후 등장한 한(漢), 조조(曹操)가 세운 위(魏), 이어 등장한 진(晋) 모두 옥새를 자신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옥새는 이어 수(隋)와 당(唐)을 거쳐 줄곧 전해져 오다가 후당(後唐: 923~936) 대에 이르러 마침내 모습을 감춘다.

송(宋) 대에 이르러 모습을 감췄던 옥새가 다시 나타났다.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 나타난 옥새는 위조품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 ‘가짜 옥새’는 후대 왕조가 손에 넣으려는 보물 중의 보물로 변한다. 여진족 계통의 금(金)나라가 가져간 뒤 다시 몽골의 원(元) 왕실로 넘어갔다는 이 옥새를 찾기 위해 명(明)은 몽골 잔여 세력이 옮겨 간 북방을 향해 진군까지 한다.

그러나 명나라 이후 이 옥새의 향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명대와 청대 이후 그 오랜 시간 시달렸던 ‘옥새=정통성’의 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옥새 또는 금속 종류 등으로 국새를 다수 만들어 더 이상 도장으로 인한 정통성 문제가 거론되지 않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특별히 만든 세 발 달린 솥 아홉 개, 그리고 그 유명한 보물인 화씨벽으로 만들었다는 옥도장의 옥새. 이 두 가지는 중국의 권력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약 2000년 이상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욕심을 냈던 권력의 상징물이다. 달리 보면 권력을 지닌 ‘나’와 그러지 못한 ‘너’를 가르는 장치는 결국은 축선이다. 그리고 그 위에 누가 올라서 있느냐는 점은 권력의 소유 여부를 가름하는 경계다. 축선 위에 서서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르고, 나를 중심으로 주위를 다시 서열로 매기는 방식. 이를 테면 ‘축선 위의 사고(思考)’다.

앞 장에서 설명한 대로 축선은 원칙과 위계, 그리고 질서 등을 나타낸다. 왕조 권력자들이 좇았던 세 발 솥과 옥새는 ‘명분’의 다른 표현이다. 누가 법통과 적통을 쥐느냐를 가름하는 중국식 사유관념의 잣대다. 현재의 중국 공산당이 건국 후 최대 잔치라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을 과거 왕조가 구축했던 자금성의 풍수 축선에 세운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 축선에 올라서려는 의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사이에 벌어진 내전, 그 이후의 중국 공산당이 보인 치국(治國)의 과정도 이 축선의 개념에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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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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