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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문학상] 박민규 “그것 참, 아무튼 감사합니다…석고 데생 같은 작품인데…”

박민규씨가 쓴 색안경은 프레임이 나무로 된 골동품이다. 그는 “남들이 알아보는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 대중을 만날 때만 쓴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올해 황순원문학상이 돌아간 단편 ‘근처’의 주인공 호연은 40세 독신 남성이다. 일에 쫓겨 살아오다 문득,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죽음에 맞서려 버둥거려도 보지만 결국 담담히 맞이하기로 한다. 죽음과 맞닥뜨려야만 간신히 멈춰 서서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인간의 습성일까.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 함께 타임캡슐을 파묻었던 친구들과 재회하는 게 이야기의 큰 줄기를 만든다. 읽는 이의 타임캡슐도 끄집어내도록 이끄는 문장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시인 박민규’가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이다. 수상 소식을 알리는 e-메일에 작가는 “그것 참. 아무튼 감사합니다”라 담담히 답했다. 아무튼 인터뷰에는 응했다. 강원도 춘천에 작업실을 얻어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를 찾아갔다.

-어떻게 지내세요.

“책 읽고 글 쓰고 생각하고, 밤에 날이 좋으면 별을 봐요. 지난 2년 정도 연락을 끊고 개인으로 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청탁받은 소설 쓰는 외에 어지간한 건 거의 안 해요. 갈 곳도 없고 약속도 없는, 아무 일없는 상태가 글 쓰기에 가장 좋거든요. 소설 쓰면서 공부할 것도 많아져서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언론과의 인터뷰도 거의 4년 만인데.

“앞으로도 안 할 거예요. 인터뷰를 하면서 매스컴이 굉장한 힘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데, 힘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힘 근처에 가고 싶지가 않아요. 성질이 변할 것 같아서….”

-학교 다닐 때 성실하셨나요?

“ 15등급 중 15등급이었어요. 대학 다닐 땐 거의 학교에 나간 적이 없어요.”

-글 쓸 땐 너무 성실하셔서요.

“저뿐만 아니고, 많은 이들이 그럴 거라 생각해요. 뭔가 자기가 빛을 가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발견하면 누구나 성실할 것 같아요. 진짜로 소설 청탁은 단 한 번도 펑크 낸 적 없어요.”

-‘근처’는 어떻게 쓰게 됐는지.

“단편은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쓰거든요. ‘근처’는 제가 좋아했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짐 캐리의 ‘맨 온 더 문’이 그분 일대기를 다룬 영화죠. 소설의 내용 하고는 전혀 다르고, 그 일대기랑은 더 상관없지만 그냥 그 양반에게 이런 이야기를 주고 싶었어요.”

-e-메일 회신 첫 줄 “그것 참”의 의미가 뭔가요.

“조금 의아한 면이 있었어요. 이런 소설은 그림으로 치면 석고 데생 같은 거랄까요. 가장 기본적인 툴로 쓴 거죠. 제가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드린 거(‘누런 강 배 한 척’)나, 어머님한테 드리려고 쓴 소설(‘낮잠’)도 비슷해요. 가령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여든이신데 그분이 읽고 좋아하실 만한 글이거든요. 충격이었던 건, 그런 작품들을 두곤 ‘박민규 문학 세계가 깊어지고 발전했다’고 평한다는 거였죠. 그런 걸 굳이 안 쓰면 그렇게 못 쓴다고 생각하는 풍토인가…. 한편으론 문화라는 게 너무 빨리 변해서 요새는 마치 유행 같은 데, 뭔가 지킬 것도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클래식 쓰는 작가도 있어야죠, 모두가 판타지 쓸 때.”

-책을 낼 때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데.

“제가 되게 좋아해요, 아내를. 나중에 나이 들어 노인이 됐을 때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할머니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주름살 하나도 행복한 각도로 잡히도록.”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실은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사랑이라는 게. 원래는 제가 굉장히 불화를 많이 일으키고 화를 잘 내고, 좀 엉망진창인 성격이었을 거예요. 아내를 만나면서 굉장히 편안하게 됐어요. 아내가 저를 점점 성장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요.”

아내가 너무 좋아 아내 닮은 딸을 낳고 싶었단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던 신혼 시절, ‘전자파를 많이 쐬면 딸 낳는다’는 풍문을 듣곤 일부러 컴퓨터 앞에 붙어있다가 “결혼하더니 근무 태도가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 하나를 뒀을 뿐이다. 둘째를 가질만한 타이밍에 노모가 치매를 앓았다. 아내는 “어머니를 둘째라 생각하자”며 그를 달랬다. 아버지는 치매 앓던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진갑 나이에도 물구나무를 번쩍 설 정도로 건강하던 아버지는 아내가 망가진 모습에 충격을 받아 심장이 멈춘 것이라고, 아들은 짐작한다. 속 썩히던 아들이 사람 되라고, 부모님이 죽음으로써 인생을 가르쳐주신 거라 생각한다. 매일 잠드는 것이 곧 죽음이라고, 다행히 오늘은 깨어나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그는, 살아있는 동안 후회 없이 쓰고 아낌없이 아내를 사랑하리라 다짐하는, 그런 사내였다. 그의 담담함이란 남다른 예민함과 섬세함을 감싸는 외피인 듯했다. 죽음에 대한 사유는 그 안에서 그렇게 머물다 ‘근처’라는 텍스트에 잔잔히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경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박민규 약력

▶1968년 울산 출생 ▶2003년 문학동네신인작가상·한겨레문학상 받으며 등단 ▶장편 『지구영웅전설』(200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핑퐁』(2006)『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 ▶소설집 『카스테라』(2005) ▶신동엽창작상·이효석문학상 수상

심사평       황순원문학상
박민규의 ‘의미있는 변화’에 주목


올해 본심에 오른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현저히 좋아 보인다는 공감대 속에서 심사가 진행됐다. 심사위원들 각자가 후보작 하나하나에 대한 독후감을 발표하는 과정을 거쳐 한 작품씩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켜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①김숨의 ‘간과 쓸개’, ②박민규의 ‘근처’, ③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였다. 이 세 작품은 장단점을 미묘하게 나누어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①과 ②를 견줄 때 미혼의 독신자인 ②의 인물보다 가족 내적 존재이면서도 고독할 수밖에 없는 ①의 인물이 더 큰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①과 ③을 나란히 놓고 보면 ③이 그 문장의 유려함과 그 구성의 치밀함에서 뛰어나 보인다, ②와 ③을 견주어 보면 ②의 주제적 측면이 부각된다, 라는 식이다.

세 작품 중 어느 것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어도 좋다고 생각됐지만, 결국 우리는 박민규의 ‘근처’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 작품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점들, 즉, 죽음이나 미혼의 독신자라는 인물 설정이 ‘근처’의 성찰을 잘 부각시키지만 그 대신 작위성과 감상성을 수반하게 된다는 점, 어린 시절에 함께 묻어둔 타임캡슐이라는 모티프가 진부한 것일 수 있다는 점, 그 타임캡슐이 두 개 이상이었다는 설정에 개연성 문제가 있다는 점 등에도 불구하고 주제·문장·조직 등 여러 측면에서 갖는 이 작품의 장점이 귀중하고, 뿐만 아니라 그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점들조차도 단순히 약점인 것만은 아니고 문제적인 것이 될 수도 있으며(이 점을 밝히려면 꽤나 길고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게다가 이 작품이 작가 박민규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의미 있는 변화의 표지일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수상을 축하하며 작가의 발전적 변화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황현산·오정희·최원식·성민엽·구효서(대표집필 성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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