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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시시각각] 이회창에게 거는 기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과거 세 번이나 대권에 도전했을 때 그는 충청도의 후보가 아니었다. 그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국가적인 정치지도자였다.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도 그가 충청도 출신이기 때문에 표를 준 게 아니었다. 그가 충청도의 이익만을 대변하겠다고 대선에 나섰다면 출마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해 총선 때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 총재가 되면서 충청지역의 맹주로 물러앉았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퇴행적 정치행보를 두고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버텼다. 두 번이나 거의 대통령이 될 뻔했던 그는 지역정당의 한계 속에서도 국민적인 정치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는 미묘한 정치적 현안이나 여야 간에 사나운 정쟁이 벌어질 때마다 명쾌한 논리와 균형 잡힌 안목으로 촌철살인의 논평을 내놓곤 했다.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입지와 말의 무게는 원내교섭단체를 꾸리기도 어려운 선진당의 의석 수를 훨씬 능가한다.



그랬던 이 총재가 요즘 싹 달라졌다. 바로 세종시 문제에 대해 보여준 그의 편협한 시각과 거친 대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보수원로지식인 1100여 명이 발표한 ‘세종시 수정 추진 요구’에 대해 “이들이 원로지식인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에 앞서 세종시 계획의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해선 “충청인을 분노케 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 앞에선 명쾌한 논리와 균형 잡힌 안목을 갖춘 전국적인 정치지도자의 의연한 면모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군소 지역정당 지도자의 초라한 맨 얼굴만 남은 것이다.



이 총재가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고집한다면 충청민심의 함정에 빠진 현재의 정치지형상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선진당은 물론 수도 이전 공약으로 재미를 봤던 민주당이나 쓴맛을 봤던 한나라당 모두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재 같은 국민적인 정치지도자마저 국가적 불행이 될 수도 있는 수도 분할을 두고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국가적인 불행이다. 세종시 건설은 이미 지역 민심에 불가침의 성역처럼 굳어졌다. 충청지역 이외의 인사가 이를 거론하면 오히려 반감만 사기 십상이다. 세종시에 대한 이 총재의 집착이 충청 출신이란 지역적 한계에서 비롯됐다면 거꾸로 세종시의 전향적 해법도 이 총재가 바로 충청 출신이기에 가능하다.



여기서 이 총재는 두 가지 명백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나는 세종시 건설이 정부의 효율성이나 국토의 균형발전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충청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야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수도 이전 공약이 그렇고, 그 후에 여야가 합의한 행정중심복합도시도 마찬가지다. 이 총재는 대선 후보 시절 수도 이전을 끝까지 반대했다. 그런 이 총재가 이제 와서 “세종시 계획의 수정은 대국민 약속의 파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세종시 건설은 대국민 약속이 아니라 충청도민을 상대로 한 정치공학적 야합이었을 뿐이다. 둘째는 정부가 나뉘어 이전할 경우 엄청난 비효율과 낭비가 초래될 것이란 점이다. 이 총재가 문제 없다고 아무리 우겨도 정부 기능을 분할하면 국가적인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세종시 계획의 수정은 이 총재 자신과 충청인들에게 훨씬 더 큰 기회를 안겨줄 수 있다. 행정부처의 이전을 백지화하는 대가로 실속 있는 신도시 건설과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충청인에겐 더 큰 이득이다. 무작정 행정도시만 외칠 게 아니라 과학도시든 기업도시든 인구 50만 명의 명실상부한 자족도시를 만드는 게 세종시 건설의 목표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 총재가 행정도시를 능가하는 대안을 가지고 지역민을 설득할 수 있다면 역사에 남을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적 낭비를 막고 지역경제를 살린 위대한 정치인. 멋지지 않은가.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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