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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최대 ‘골치’는 부패 … 지난해 당원 28만 명 처벌

<썩을 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는 돈을 향해 달려왔다(向錢走). 막대한 부(富)를 쌓았다. 그러나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성장의 이면에는 부정부패와 사회 갈등 등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다. 특히 정부 고위 인사의 부정부패는 공산당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 수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이 도입한 부패 척결 관련 법률과 규정이 무려 1200여 건을 넘은 상태다. 또 집단시위가 급증하면서 사회 불안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같은 부정부패와 사회 갈등은 모두 중국의 성장을 가져온 개혁·개방의 추진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은 과연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국기 게양식이 열리고 있다. 중국인들은 일출 시간에 맞춰 게양되는 중국의 상징을 보며 뿌듯한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나가기 위해선 부패 척결과 사회 갈등 해소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베이징=박종근 기자]


신 중국 60년 <5> 공산당 일당제는 지속될 것인가

“부패를 다스리는 건 당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다.” 후진타오(湖錦濤)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득 권력과 대중 사이의 갈등이다.” 중국공산당만 30여 년간 연구한 한 중국 원로학자의 지적이다.



‘부패’와 ‘사회 갈등’의 두 가지 문제는 중국공산당이 현재 직면한 최대 골칫거리다. 흥미로운 건 이런 문제들이 중국공산당의 성공을 가져온 바로 그 요인들에 의해 초래됐다는 점이다. 먼저 중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목되는 부패를 보자. 중국에서의 부패는 개혁이 전개된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개혁은 정책을 실천에 옮길 관리들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이처럼 이양된 권력은 궁극적으론 경제적 부와 결합됐다. 이 같은 권력과 부의 이중주는 중국의 경제 발전에 동력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부패로 이어지기도 한 것이다.



부패는 집권당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부패의 핵심에 권력을 장악한 공산당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한 시사지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형사 처벌을 받은 공산당원 수가 무려 28만7000명에 달했다. 사태가 이쯤 되자 위기 의식이 높아지면서 각종 대책이 쏟아진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중국문제 전문가인 민신페이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부패 척결을 위해 도입한 법률과 규정이 이미 1200여 건을 넘어선 상태다.



그렇다고 부패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부패를 줄이려는 시도가 공산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선 독립된 사법기관과 자유언론, 시민단체 등 당으로부터 독립된 반부패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이런 외부로부터의 진정한 경쟁과 감독을 허용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기구들이 당의 권력 독점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사회적 불안정이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하기 시작한 집단시위(群體性事件)는 2005년 무려 8만7000건에 달했다. 집단시위가 급증하자 놀란 중국 정부는 자료 공개를 중단했다. 그러나 이전의 추세를 감안할 때 그 수는 이미 연 10만 건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의 사회적 불안정 또한 기본적으로 개혁이 추진된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중국의 개혁은 경제 발전에 중점을 뒀고, 이는 엘리트주의적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혁은 경제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관리와 경영자 등 엘리트의 목소리를 증대시킨 반면에 대중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약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공산당 당원의 구성 변화가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당원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노동자와 농민의 비중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사영 기업가의 입당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다음 해인 2003년의 경우 공산당원 중 노동자와 농민의 비율은 50% 이하로 줄어버렸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집권당화하면서 엘리트 정당으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엘리트주의적 접근은 중국의 경제 발전엔 기여했지만 동시에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중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개혁·개방이 시작되기 직전인 78년 0.22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7년에 이르면 0.496으로 급증해 경계 수위를 넘어섰다.



이처럼 개혁은 사회적 부정의를 초래함으로써 권력 집단과 대중 간의 갈등을 확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표출할 기제를 갖지 못한 하층민들은 시위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려 들었다. 사태를 크게 확대시켜야만 언론매체나 중앙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따라서 숙원도 해결될 것이라는 판단이 대중을 거리로 이끈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전체 집단시위 가운데 농민과 노동자에 의한 시위가 65%를 차지하는 이유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선 혁신적인 조치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혁신 도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그동안 중국의 개혁을 주도해 온 엘리트들이 기득권 세력화하면서 추가적인 개혁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혁신 조치 도입에 대한 당내 합의 도출도 쉽지 않다. 실제로 당내 민주와 같은 최소한의 변화만을 도입하려는 지도부의 시도에 대해서도 일각에선 “당내 민주가 인민 민주에 뒤져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당내 이견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또 필요한 혁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입할 것인가는 경쟁 세력이 없는 중국공산당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jckim@catholic.ac.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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