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가봤습니다] 산촌으로 유학 왔습니다, 아이들은 풀과 나무를 닮아 갑니다

해외로 조기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혹은 선진국의 교육환경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최근엔 지역 주민도 몇 안 되는 산촌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는 부모가 늘고 있다. 해외로 보내든, 시골로 보내든 ‘자녀가 더 행복했으면’ 하는 게 부모의 바람이다. 기자가 산촌유학 현장에 다녀왔다.



박정현 기자의 철딱서니학교

집을 떠나 철딱서니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지도 교사를 따라 귀가하고 있다. 도시에서 시골로 1년 동안 유학 온 아이들은 생활을 스스로 해결한다. [최명헌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 공수전리 ‘철딱서니학교’(기숙사) 앞마당.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어깨에 가방을 멘 채 한쪽으로 달려간다. 얼마 전 태어난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며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다른 아이들은 뒤뜰에 놓인 닭장에 모였다. 학교 간 사이 닭 세 마리가 달아났다며 호들갑이다. “도망간 닭은 제가 모두 잡아올게요.” 김환(4학년)군의 표정이 비장하다. 김군과 남자 아이들 몇 명이 집 근처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가출한 닭 두 마리를 잡아왔다. 30분 새 검게 탄 얼굴이 땀범벅이 됐다. 이 아이들은 올해 초 서울·경기 등 대도시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산촌유학을 왔다. 지난해 이맘때라면 2학기가 시작돼 마음이 분주했을 아이들이 여기선 자연과의 놀이에 푹 빠져 있다.



학원·PC방 없는 산촌살이 “놀 거리 많아요”



이곳에는 지난 3월부터 초1~중1 학생 20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현덕 센터장 부부 외에 생활을 돌보는 ‘샘’ 3명이 더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지역 토박이 아이들과 현지 학교(상평초·공수전분교·양양중)를 다닌다.



한낮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PC방도 없고, 학원도 없다. 아이들은 왜 이곳으로 왔을까. 김수정(5학년)군의 어머니 윤화정(43·천안시 덕남구)씨는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자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산촌 유학을 보냈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온 조서린(4학년)양은 처음 아빠의 제안에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우연히 산촌 유학 간 아이들을 TV에서 본 후 ‘재밌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생겨 오게 됐다. 한 학기를 보낸 조양은 “외둥이라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한데, 여기는 함께 생활하는 언니·오빠도 있고 친구들도 많아 재밌다”고 했다.



서울에서 온 조기흠(5학년)군은 “집에 있을 때는 공부에만 시달렸는데, 여기서는 공부도 하고 맘껏 뛰어놀 수도 있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청소·설거지 대부분 스스로 해결



철딱서니학교는 공수전분교장과 마을주민들이 어떻게든 폐교를 막아보자고 방법을 찾다가 만들어졌다. 양양군의 지원을 받아 비어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4명이 함께 쓸 수 있는 방 6개와 식당, 세미나실로 꾸며져 있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 현지 학생들과 공수전분교에서 정규 수업을 받은 후 이곳에서 합창·기천무·영어 등의 방과후 수업을 받는다. 물놀이·낚시에 농사도 지으면서 놀다 보면 아이들의 하루해가 무척 짧다. 김 센터장은 “처음 산촌 유학을 오면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곧 자연 속에서 놀 거리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산촌 유학을 할 수 있는 곳은 7곳 정도. 형태에 따라 기숙사 개념의 ‘센터형’과 농가에서 생활하는 ‘농가형’이 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서 농가형 ‘시골살이 아이들’을 운영하는 이현숙씨는 “센터형은 학생 수가 20명 내외로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운영되고, 농가형은 농촌 속에 스며들어 생활하는 것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6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산촌 유학을 온 아이들은 아예 주소지를 시골로 옮겨 전학을 하기도 하지만, 3개월 이하의 ‘교류학습’을 하고 도시 학교로 돌아가는 형태도 있다. 예컨대 전북 임실군 덕치초등학교는 가족 중 한 명이 반드시 귀촌해 자녀와 함께 생활해야 입학을 허용한다.



김 센터장은 “산촌 유학은 공부는 공교육, 생활은 대안교육 형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형태가 어떻든 아이들의 생활은 비슷하다. 설거지나 청소, 공부 등을 대부분 스스로 해결한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아 바꾸는 치료소 아니다



이지연(가명)씨는 외동아들 때문에 힘든 경험을 하고 산촌 유학을 결정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산만한 데다 언행이 바르지 못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정신과 상담을 2년 동안 받았어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경 좀 쓰라는 주의도 받을 정도였죠.” 그런데 산촌 유학 후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정결핍이 치유된 것 같다”고 이씨는 판단했다.



그러나 산촌 유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학교 부적응아에 대한 해결책이나 심신 치료 목적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산촌유학협의회 송일 대표는 “산촌 유학을 가면 말썽꾸러기가 모범생이 되고, 아토피나 편식이 자동으로 해결되길 바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라고 지적한다. 산촌 유학은 도시 문화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일종의 대안교육이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 정도 부모와 떨어져 시골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 욕심에 보냈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반드시 캠프 등을 통해 경험을 하게 한 후 아이가 원할 때 보내야 한다.



산촌학교는 대부분 초등학생 대상이다. 김 센터장은 “이곳에서 생활하다 중학생이 됐는데 계속 있겠다고 하면 막을 수 없는 입장”이라며 “중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산촌 유학은 지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이미 30년 전부터 산촌 유학을 진행해온 일본과 비교해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나 교수법이 정비돼 있지 않은 편이다. 송 대표는 “일본처럼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이 재정 지원을 해줘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교수 연수 프로그램 개발 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현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