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한주를 열며] 대행자

총 길이 7㎞가 넘는 서해대교가 2000년 말에 완공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을 보며 불쑥 이런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긴 다리 위로 바다를 건넌다면 얼마나 신날까. 그런데 내가 그 때까지 운신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





사람에게는 이런 시기가 있다.


가수가 노래를 잘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보면 자신도 가수가 되고 싶고, 각 분야의 인기 스타를 보면 그러한 인물이 되고 싶다.


물론 세월이 가면서 차츰 깨닫게 된다.





여러 사람이 원하는 직업을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고, 일인자 또는 스타의 자리에 오르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다는 것을. 어릴 때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 꿈은 나중에 의사나 판.검사와 같이 경제적인 안정을 주는 직업으로 바뀌고, 마침내 양에 차지 않는 현실의 직장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꿈은 완전히 지워지는가.


아니다.


오래 살고 싶은 꿈, 모든 영광을 다 누리고 싶은 꿈은 아직도 가슴 속에 그대로 있다.


불교식으로 압축하면 무량한 수명과 광명의 소원이다.





오래 살아서 미래 세상의 볼거리를 즐기겠다는 것도 저 소원에 포함된다.


어떻게 하면 무량한 수명과 광명을 누릴 수 있을까. 지금 이 몸으로는 불가능하다.


수명을 1백세 이상으로 연장하고 한 두 분야에서 성공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살아서 모든 분야의 영광을 다 누릴 수는 없다.





여기서 내가 직접 나서지 않고 나의 대행을 내세우는 방법이 떠오른다.


자식을 잘 교육시켜 내가 도달하지 못한 높은 곳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사람을 복제할 수도 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자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복제술로 나의 분신을 만든다 하더라도 육신은 복사할 수 있지만 마음마저 복사해 넣어줄 수는 없다.


설사 내 자식이나 내 분신이 내 마음대로 움직인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모든 곳에 이를 수는 없다.





헤밍웨이 소설을 영화화한 한 장면이 나의 대행자를 찾는 데 좋은 힌트를 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주인공은 적군이 쏜 총알을 맞고 쓰러진다.


여주인공이 울부짖으며 그에게 매달린다.


적군은 달려오고 있다.





머뭇거리면 둘 다 죽는다.


남자는 떠나지 않으려는 여자에게 이런 취지의 말을 한다.


"나는 당신 속에서 살겠다. 당신이 살아야 내가 산다. 빨리 떠나라. " 만약 우리가 내 몸속에 나를 가두어 두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이 속에서 나를 살게 한다면, 나는 모든 시간과 성취를 남김없이 누릴 수가 있다.





1천년 전에 가장 높은 부귀영화의 산에 올랐던 이로부터 시작해 1만년 후에 가장 넓은 영광의 바다를 마음껏 누비고 다닐 이를 비롯한 모든 성취자들에게 나를 담아 버리는 거다.


참, 실패가 없으면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





세상에서 실패의 아픔을 겪었거나 겪을 모든 이들에게도 나를 주어 버리는 거다.


그러면 나는 모든 성공자와 실패자가 된다.


남에게 나를 담는 데 내 의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저 성공자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배와 비행기의 자동 방향전환장치로 풀이하면 된다.


배에 오토 파일럿을 달고 목표점을 설정해 배가 스스로 가게 한 후에, 나는 마음껏 바다를 즐긴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여유가 있는가.


모든 분야의 일인자들에게 세상의 운행방향을 보게 하고 나는 한가롭게 세상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방향을 잡으니 더 이상 편할 수가 없다.


어떤 이는 이렇게 힐문할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해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려 하지 않고, 남의 성공에 박수만 보내려고 하는 것은 세상사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 도피주의.패배주의.은둔주의.짝사랑주의가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지금 각 분야의 일인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절대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장엄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은 하되 스타가 못되더라도 자족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모든 이에게 나를 넘기는 것은 나를 지우는 것이다.





그러면 일등과 꼴찌, 나와 대행자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


나 그대로 대행자요, 성공자이며 실패자이다.


그대로 평화롭고 안락하다.





釋之鳴 청계사 주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