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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대선 생각 말고 원자바오처럼 국민 보살펴야”

“어떻게 해야 나라에 봉사하고, 자신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대통령을 잘 보좌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어요.”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나의 아버지 같은 선생님’이라고 표현하는 조순(81) 서울대 명예교수를 9일 서울 서초동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 명예교수는 두 시간의 인터뷰 내내 ‘정운찬 총리’의 성공을 바랐다. “본인을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나라를 위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조 명예교수는 특히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강조했다. 정 후보자의 경제관과 철학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르다고 해도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 “정 후보자가 이명박 대통령을 잘 보필할 수 있도록 이 대통령이 정 후보자를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총리 정운찬’의 역할과 공간을 인정하고 힘을 실어주라는 얘기로 들렸다.

-정 후보자는 평소 4대 강 정비 사업과 감세 정책 등 이 대통령의 핵심 정책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해왔습니다.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학자 시절 생각이 있겠지만, 정부의 중책을 맡은 입장에서 판단하고 고민하는 것은 다를 수 있지요. 아니 달라야 합니다. 예전에 한 말을 바꾸는 것이냐는 얘기는 맞지 않아요. 이를테면 내무부 장관 시절 하던 말을 국방부 장관이 돼서도 똑같이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달라져야 하지 않습니까.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만 행정부에 있으면 행정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워요. 본인이 비판했기 때문에 더 잘 보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은 몰라서, 정보가 부족해서 비판한 측면도 있을 테고요. 미국의 경우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 요직에 공화당 인사들이 많이 진출해 일하고 있습니다.”

-정 후보자가 이 대통령의 정책과 충돌할지, 아니면 순응해 갈지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있습니다.

“국민에게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이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을 이해하고, 대국적으로 대통령에게 협조해야 할 것은 협조해야 합니다. 대통령도 자신과 다른 의견이더라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는 서로 같지 않아도 화합하고, 소인은 같아도 화합하지 못함)’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총리도 화이부동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다르되 서로 협의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총리, 내각의 장관들 사이엔 국가의 비전과 전략에 대해 항상 의견 교환과 조정이 있어야 합니다.”

-행정복합도시(세종시)를 “원안대로 다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정 후보자의 발언으로 정치권의 논란이 뜨거운데요.

“국무총리로서 확고한 발언이라기보다 평소 학자로서 갖고 있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 것일 겁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진보 진영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조순(왼쪽)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7년 3월 8일 자신의 팔순잔치에 온 정운찬(당시 서울대 교수) 총리 후보자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 후보자가 진보 진영과 특별히 더 거리가 가깝다고 할 수는 없어요.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양쪽 모두에 아는 사람이 많아요. 그대로 있으면 후보가 될 수 있다?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반면 총리로 지명됨으로써 정 후보자가 여권의 대선 후보 중 하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누구나 어떤 자리에 있든 남의 평가를 받는 법입니다.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총리가 됐으면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 이후 일을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정 후보자가 어떤 총리가 되길 바라십니까.

“사실 한국의 총리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불분명해요. 건국 후 60년 동안 많은 총리가 있었는데도 뚜렷한 모습을 심어준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희생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합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나 주룽지 총리처럼 국민들을 찾아 다니면서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정 후보자가 총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정부와 나라를 위해서도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 그런 시점에 와 있습니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포석이 끝나고 중반전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어요. 대개 중반전을 어떻게 하느냐가 바둑 한 판을 결정하는 법입니다. 국제적으로 봐도 북핵 문제, 중국의 부상, 일본의 정권 교체 등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 참 중요한 시기입니다. 국가의 방향을 정립해 대통령과 총리, 내각이 모두 힘을 합쳐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주의는 어떻게 보십니까.

“중도주의는 좋다고 봅니다. 필요한 시점이었고, 방향 전환은 옳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중도주의를 얘기하고 나서 사회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나라가 극과 극으로 갈려서는 안 됩니다. 서로 화합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중도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있어야 나라가 제대로 됩니다.”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주의와 정 후보자가 어울립니까.

“내가 생각나는 사람 중에선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조 명예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율곡 이이 선생 얘기를 했다. 율곡은 조정에서 이런 저런 좋은 건의를 많이 했다. 10만 양병설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당시 임금 선조는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성혼이 율곡에게 “그만 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텐데 그만 나오는 게 어떤가”라고 말했다. 율곡은 “그렇지만 이 조정을 버릴 수가 없지 않으냐”고 대답했다. 조 명예교수는 “바로 그것이 옳은 지도층의 마음가짐이다. 맞지 않더라도 계속 이야기해서 마음을 돌리도록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화이부동”이라고 말했다. 글=이상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조순과 정운찬=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부자(父子)’ 같은 사제(師弟)지간이다. 정 후보자가 서울대 졸업 후 한국은행에 들어가도록 추천서를 써준 이도, 유학길에 오르도록 권유한 이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 자리 잡은 정 후보자를 서울대 교수로 불러들인 이도 모두 스승 조 명예교수다. 두 사람의 인연은 40여 년 전 시작됐다. 1967년 가을 정 후보자는 서울상대 2학년이었고,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모교 강단에 선 조 명예교수는 케인스의 ‘일반이론’으로 학생들을 압도하는 젊은 경제학자였다. 조 명예교수가 연속 2시간 강의 중간 쉬었다가 들어가면 어지럽던 칠판이 항상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어느 날 칠판을 지우고 있던 키 작은 학생을 조 명예교수가 발견했다. 정 후보자였다. 조 명예교수는 그 순간을 ‘정운찬 하면 가장 떠오르는 장면’으로 꼽고는 환하게 웃었다. 조 명예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정 후보자에 대해 “부드럽고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지만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결단력과 높은 도덕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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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