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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폭탄주·뇌물비리 없는 ‘여성천국 직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1부 직원들이 진료비 심사를 상의하기 위해 모여 있다. 이 부서 직원 23명 중 남성은 두 명이다. [김상선 기자]
서울 남부터미널 맞은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곳을 처음 찾는 남성 민원인들 중엔 사무실 입구에서 잠시 주춤거리는 이들도 있다. 책상과 캐비닛이 가득한 사무실 풍경이야 여느 기업과 다를 바 없지만 거의 모든 직원들이 여성이다 보니 멈칫하는 것이다. 심사 1부 23명 직원 중 남자는 두 명뿐이다. 황용상 차장은 “처음 오는 손님 중엔 여성이 많은 게 이상한지 출입문 밖에 붙어있는 부서 이름을 확인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전체 직원 1783명 중 여성이 1296명으로 73%를 차지한다. 노동부가 근로자 500명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 1607개를 조사한 결과, 심평원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출범 당시엔 여성 임원이 없고 여성 관리자가 절반이 안 됐다. 지금은 임원 네 명 중 두 명이 여성이고, 차장급 이상 353명 중 여성이 197명이다.

심평원은 병원이나 약국이 청구한 진료비나 조제료가 적정한지를 심사한다. ‘의료계의 검찰’로 불린다. 문제가 있으면 진료비를 삭감하기 때문에 부정이 개입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2000년 7월 출범 이후 10년 동안 뇌물 사건이 단 한 건도 터지지 않았다.

심사실 진덕희 실장은 “외부 민원인과 밤에 저녁이나 술을 먹는 문화가 거의 없고 여성 특유의 세심함과 투명함이 직장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심평원을 찾는 민원인들은 주로 1층 로비의 탁 트인 민원실에서 직원을 만난다. 한 의료기기 회사 사장은 “술 한잔 하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싶지만 술은커녕 밥 한 끼 먹자고 해도 거절 당한다”며 “터놓고 얘기할 수가 없어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융통성 없이 규정대로만 일을 처리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이런 관행을 선호하는 데도 있다. 외국제약사의 한 임원은 “식사나 술자리에서 만나기가 어려운 점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기준대로 일을 처리하니까 오히려 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심평원에 유독 여성이 많은 이유는 병원과 약국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간호사나 약사 같은 전문직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남성 위주의 기업과는 문화가 많이 다르다. 자원관리부 이영아 차장은 “저녁보다 점심 때 회식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며 “예술의 전당 같은 곳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저녁 때 회식을 하더라도 보통 오후 10시 이전에 끝난다고 한다. 주량에 따라 소주나 맥주를 한두 잔 하고 사이다나 콜라를 주문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회식 후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노래방이라고 한다. 한 여직원은 “회식 후 노래방을 꼭 간다”며 “상사 뒷담화도 하고 노래를 함께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여성에 둘러싸여 있는 남자 직원들의 불만은 없을까. 심사1부의 황용상 차장은 “남자들끼리 ‘우린 무늬만 남자, 사실상 중성’이란 농담을 가끔 한다”며 “여성들한테 꼼꼼한 일 처리를 배울 수 있고 후배들을 잘 챙겨줘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성 직원은 “화분을 옮기거나 책상 배치를 바꾸는 등 힘을 써야 할 때는 약간의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동부 조사 결과 1607개 기업의 여성 관리자 비율이 2006년 10.2%에서 지난해 14.1%로 올라갔다. 전체 여성 직원의 비율도 같은 기간 30.7%에서 34%가 됐다. 하지만 28.9%인 466곳에서 여성 관리자가 한 명도 없었다. 여성 임원은 민간기업이 6.4%로 공공기관(4.1%)보다 높았다. 여성 직원이 많은 데는 ㈜프로에스콤(인력파견업), 대상FNF(김치 제조), 아모레퍼시픽, 웅진코웨이 등이었다. 중앙부처 중에는 보건복지가족부에 여성 간부가 많았다. 과장급 이상의 25.6%(2005년 11.4%)가 여성이었다.

복지부 이기일 인사과장은 “여성은 의사 결정이 빠르고 합리적”이라며 “여성 부서장한테 한번 찍히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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