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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1호 당원증

여신이 미처 가리지 못한 것. 그것은 흉터였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다. 아테네 여신은 그가 정적들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외모를 좀 바꿔놓았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늙은 유모는 그가 어렸을 때 멧돼지 사냥을 하다 생긴 다리의 상처를 단박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고대에는 흉터나 반점 같은 신체적 특징이 신분증 역할을 했다. 서양에서 신분증이 제도화된 것은 중세에 이르러서다. 국가의 통제가 강화되기 시작하면서다. 여권을 뜻하는 ‘패스포트’는 15세기 유럽의 ‘성문 통과증’에서 유래한 것이다. 프랑스어 ‘파스포르트’가 어원인데 ‘파스(passe)’는 통과, ‘포르트(porte)’는 성문을 말한다. 징병을 쉽게 하고 탈영을 막기 위해 병사 신분증이 나왔다. 15세기 후반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흑사병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담은 ‘위생증’이 나왔다(발렌틴 그뢰브너, 『너는 누구냐? 신분증명의 역사』).

우리나라에서도 신분증은 백성에게 조세와 부역의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통제 수단이었다. 고려시대에 호패제가 도입돼 조선에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길이가 3촌7푼, 너비가 1촌3푼, 두께가 2푼이고 위는 둥글게 아래는 모가 난’ 호패는 신분에 따라 상아에서 잡목까지 재료도 정해져 있었다. 관료는 관직만, 그 외의 사대부는 전직과 이름, 주소를 기록했다. 서민 이하는 얼굴색과 수염 유무, 키 등 신체적 특징을 자세히 적어야 했다. 1950년에 생긴 시·도민증에는 호패처럼 직업·키·몸무게·신체 특징까지 나와 있었다. 주민등록증은 68년에야 생겼다.

유명무실한 신분증도 있다. 국회의원증이다. 국회의원들은 운전면허증과 비슷한 플라스틱 재질의 신분증을 받는다. 그러나 ‘얼굴이 곧 신분증’인 까닭에 재발급 요구도 별로 없다고 한다.

9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정몽준 신임 대표와 청와대 회동을 하면서 ‘1호 전자당원증’을 받았다. 대통령이야말로 신분증이 필요 없는 위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당원증을 선물했다. “당비를 잘 부탁한다”는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의 말에 이 대통령은 “일은 초당적으로 할 것”이라고 답했다. ‘1호 당원증’을 제시해야 이 대통령이 비로소 한나라당 소속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초당적 행보를 기대해도 될까.

구희령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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